한국사 날조 반박

수교 때도 혐한국이던 대만의 진상 -한국 화교 한국사 날조 반박(4)

평범한 한국인들 2025. 3. 10. 21:57

 

1. 대만의 장개석이 한국을 독립시킨 은인이라는 화교들의 날조

한국사를 날조하다 보니 중국사도 대만사도 날조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세계사도 날조하게 되는 전형적인 혐한인들의 오류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병합한 후 조선을 발판으로 중국을 공격했다. 임진왜란 당시 히데요시의 전략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다른 방식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왔다기보다, 자국에서 치를 전쟁을 남의 땅에서 치렀다고 보는 게 맞다. 원군이라면서 일본군 뺨치게 조선인 학살이나 해대놓고 희생을 치렀다고 우긴들, 자국에서 치르는 것보다 외국에서 치르는 전쟁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게 결국 한국 전쟁까지 이어진 중국의 방위 전략이었듯 말이다.

실제로 장개석의 측근이 카이로 회담서도 일본이 조선을 차지한 후 대륙을 공격했다며, 조선의 독립을 강조했다. 중국 대륙을 일본만 노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를 공격한 제국주의 열강은 일본만이 아니었는데, 독립시키지 않아서 조선이 소련이나 다른 열강의 손에 넘어가면 중국 역시 독립 못하고 영토 회복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기 앞서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을 벌였었다. 일본이 조선에서 손을 떼봤자, 미국 혹은 소련이 조선을 차지하게 되면 앞서의 역사 반복이고, 중국 역시 일본의 손에서 미국 혹은 소련의 손으로 넘어가는 꼴을 당할 뿐이었다.

장개석은 중국 국방에서 한국이 역사적으로 차지해 온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중국이 온갖 민족에게 패할 때마다 그들이 한국까지 범접하지는 못했다. 고구려나 발해가 버티고 있으니까, 중국 만주에 질서가 잡히고 덜 혼란스러웠다.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의 눈엣가시였지만, 정작 망하니까 중국 왕조들은 이이제이도 못하고 오랑캐에 족족 패하기 시작했다. 고구려나 발해가 버티고 있었을 때는 조선처럼 500년은 꿈도 못 꾸지만 그래도 400년은 간 한나라가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도 발해도 멸망한 뒤 송나라는 300년 가고, 명나라는 200년 넘게 갔다. 갈수록 나라의 수명이 줄어들었고, 한국처럼 내부에서 다른 나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이민족의 침략으로 패해서 전 국민이 노예 신세로 떨어지며 점령당하는 끔찍한 침략과 패배와 점령의 역사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몽골이 세운 원나라도 오래 못 갔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도 마찬가지다. 만주가 중국 땅이건 말건 관심도 없는 우리지만, 만주를 고구려와 발해처럼 한국이 다스릴 때 중국이 가장 안전했고 중국인들이 가장 침략과 점령을 덜 당했다는 것은 중국사의 진실이다. 고려만 해도 송나라가 요나라나 금나라를 제어하는데 필수 동맹이었다.

이런 진실을 부정해봤자 중국만 손해다. 원나라 이전부터 동북공정해봐야 한나라부터 중국사 다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바꿔대면서 안 맞는 건 다 버리니까 남는 게 없고, 그래서 정작 자국 문화 복구는 못하면서 한국 문화 훔치기밖에 못하는 것이다.

만주에 한국인의 나라가 사라지자 바로 중국 방위가 어지러워졌는데, 한반도까지 외세의 손에 넘어가면 중국은 언제건 청나라 꼴이 날 뿐이다. 만주를 차지한 지금도 중국 국방은 안전한 국경이 하나도 없이 어지럽기 짝이 없어서, 그걸 좀 어떻게 해결하려 일대일로를 벌이다가 역시 망했다. 중국사 내내 가장 안전했던 국방 전략을 내다버리니까, 뭘 해도 될 리가 있나. 한국이 강성할수록, 오히려 중국은 중국 대륙 내서 번성할 수 있었다는 역설이 중국사 내내 증명됐는데, 그걸 무시하고 한국을 약화시키는 길로 나가니,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패하는 결과만 반복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이 독립해야 중국도 독립하고, 한국이 위험하면 중국도 위태롭다는 진리는 한국 전쟁 때 이미 증명됐다. 당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려 했는데, 김일성이 소련과 함께 한국을 공격하니 대만 공격은 하지도 못한 것이다. 지금도 한국이 자유진영 최전선에서 북한을 막아내고 소련과 중국과도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대만도 한국이 구축한 동아시아 안보 질서에 무임승차해 온 게 진실이다.

그러니 대만이 한국을 도왔는데 한국은 은혜를 저버렸다는 대만화교들의 혐한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거짓인지 알 수 있다. 대만이 일제강점기 때도 한국을 돕기만 한 게 아니라 인종청소 같은 극악한 학살 범죄를 저지른 걸 범죄로 치지 않는 인권 의식 부족 때문이자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동북공정 뺨치는 역사 날조일 뿐이다.

한국이 장개석의 도움만 받지 않고 한국 전쟁에서 대만 침공을 막았으며 한국이 핵심인 동아시아 방위에 무임 승차한 대만이 엄청난 방위비를 들이는 한국과 달리 방위비를 거의 안 들이고 경제 발전할 수 있도록, 더 큰 도움을 주었다는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만 화교야말로 대만과 한국 관계에 해악이 되는 건 물론이고, 대만의 방위에 극도로 위험한 과격파인 이유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 역시 반론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양국 국민이 복합적 역사 속에 상호 이해에 도달했을 일도, 장개석의 자구지책을 두고 배은망덕으로 몰아붙이는 미개한 행태를 통해 야만적인 감정싸움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대만 편인 줄 알았는데, 이슬람근본주의자들처럼 갈등만 부추기니 대만에서 경계심을 품고 대만 화교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외국인 취급하는 것도 당연하고, 우리 역시 그런 대만을 본받아 대만이 화교와 이주민을 대하듯 해야, 현재 인종차별 소리밖에 안 듣는 한국의 실패한 다문화 이주민 정책을 고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이 약해지면 동아시아는 초토화된다는 진리는 일본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가미카제가 몽골의 일본 침략을 막았다지만, 당연히 고려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싸우며 몽골을 가장 오래 막아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고려는 그 때문에 유럽이고 중국이고 줄줄이 몽골의 식민지로 전락해 피점령민이 됐을 때조차 사위국의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몽골군이 고려에 있지도 않았으니, 일본에 대한 재 공격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지, 몽골이 다른 나라처럼 고려를 점령했으면, 일본도 언젠가 침략되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만 해도 점령을 안 하고 전리품이며 도공들만 빼앗아 가니, 일본에 그나마 이득이 된 것이다. 도자기 산업과 가라유키 상 성노예 수출로 근대화도 이룰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성공은 훗날의 거대한 착각을 낳았다. 일본이 동아시아서 오랜 기간 단일민족 단일문화 국가로서, 그 무수한 다문화 다인종 사회의 혼란 속에 홀로 굳건히 중심을 잡아 온 조선을 침략해 무너뜨리자마자, 일본의 패망도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의 상류층을 제외한 하층민들은 한국에 건너와 제국의 브로커 노릇을 한 히키아게샤들 외엔 침략의 부를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 소작농들은 더 가난해지니, 히키아게샤들이 한국 소작농들을 수탈하고 착취해서 생산한 엄청난 쌀을 일본에 보내니, 일본 소작농들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수탈이 아닌 수출이라 거짓말하는 잔류 일제 세력의 진실이다. 자신들 조상이 한국 소작농을 착취해서 쌀을 수출했으니 히키아게샤만 부자가 됐지만, 일본과 조선 양쪽의 소작농들에겐 힘든 나날이었고, 특히 한국 소작농들은 착취와 수탈에 이어 억압과 탄압까지 받았다. 실제로 일본이 조선보다 소작농들을 잘 대접했다면 독립운동이 그렇게 열렬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을 싫어했던 노비들조차 조선 때보다 더 끔찍하게 살기 어려워지니 이판사판으로 저항했던 것이다.

다이쇼 로망 때도 빈부격차는 어마어마했고, 로망이 끝나자마자 끝없는 전쟁과 징병이 시작되었다. 그 끝은 패망이었다. 일본은 군국주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웃기는 진실은, 한국처럼 나라를 지켜 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몽골 침략은 고려가 항쟁으로 대신 막아 준 셈이고, 그 전후로 왜구며 임진왜란 같은 침략질이나 전국시대 같은 내전만 벌이고 살았을 뿐이다. 2차 대전은 자기가 일으키고 자기가 졌다. 그러니 진짜로 힘든 싸움이 뭔지도 모르고, 전쟁을 일으켜 온 국민을 끌어들여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패망하는 길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차지해야 한다고 여기고 조선의 근대화를 두 차례 전쟁으로 훼방 놓아 막았지만, 조선이 본래 계획대로 근대화했으면 동아시아의 질서가 견고한 가운데, 서구가 세계 대전에 휩쓸리는 동안 중국도 일본도 각자의 발전을 도모하며 전쟁에 국력을 소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그후에 서구의 도움으로 발전하여 서구의 눈치를 보는 동시에 서구와 힘을 겨루느라 내부 억압이 심해져 민주주의가 발전 못하는 원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진리를 모르니까, 지금까지 툭하면 동아시아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익을 위한다면서 국익을 내다버리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인들도 중국과 일본과 대만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기 바란다. 재한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들 모두 한국 멸망 소취를 외치지만, 한국이 멸망하면 지옥도 열리는 건 동아시아 전체다. 동남아도 마찬가지다.

한국 관광객들이며 한국 회사들이 떠난 뒤, 중국인들과 중국 회사들, 일본인들과 일본 회사들의 영향력이 커질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동남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겪고 있고, 겪게 될 것이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과 대만인들은 그들의 역사 자체가 그 후폭풍이었는데도, 지금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행복한 무지 속에 번영할 것이다. 1프로만 말이다.

 

2. 수교 때 대만의 혐한 파티

대만은 한국 대사관 앞에서 태극기 찢고 돌팔매질하는 혐한파티를 수교 때도 몇 번이고 저질렀다.

지난 화에서 말한 민항기 착륙 때, 대만 요구대로 한국 주권 무시하고 즉시 송환 안 시키고 1년 옥살이 시켰다고 태극기 찢고 대사관에 돌팔매질하고, 미개성의 극치를 달렸던 대만은, 정작 그 민항기 납치범들 둘을 사형시켰다. 그 납치범들이 대만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으니, 대만 화교들의 논리를 대만에 적용해 보자면, 그들의 개인적 잘못이 아니라 소수자들을 따스하게 감싸지 못하고 뒤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마구 해댄 대만의 탓이 분명하다.

84년에는 아시아청소년 선수권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중국과 대만의 국기 사용을 IOC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서, 대만의 국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건 한국만 그렇게 처리한 것도 아니고 모든 나라에서 그렇게 한 일로 올림픽 위원회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https://www.news1.kr/sports/general-sport/5497412

대만, 경기장서 자국 국기 금지…요청 거부 시 퇴장 조치 [올림픽]

대만 축출은 71년 유엔의 결정이고, 79년에 IOC가 국기 사용을 금지했다.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국기 사용 금지됐을 때는 얌전히 납작 엎드렸던 대만은, 한국에서 열린 훨씬 규모 작은 대회서만 태극기 찢고 한국 대사관에 돌 던지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리고 화교들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게 화교들이 말하는 단교 이전에는 사이가 좋았다는 한국과 대만의 관계 진상이고, 화교들이 대만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화교식 이중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교들은 그들이 주장하듯 친한파는 커녕 혐한파니까 대만이 한국을 못살게 굴고 괴롭히며 혈맹 대우는커녕 혐한파티나 즐겨왔다는 것은 만주 조선인 인종청소를 묵살했듯 전혀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화교들의 혐한파티는 온갖 혐한 사이트는 물론 앞서 말한 혐한 컨텐츠에서 피해자 코스프레와 한국 유전자 역사 문화 비하 등 각종 야만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86년 아시안 게임 때와 88올림픽 때는 혐한 방송을 일본 우익 방송보다 더 심하게 했다.

뇌물로 타낸 조작 올림픽, 지금도 대만 화교들이 한국 인터넷에서 즐겨 쓰는 혐한 표현인 후진국 소리 입에 달면서, 서울을 난지도라고 멸시했다. 쓰레기 매립지 찾아가서 방송하며, 쓰레기 나라에서 올림픽 연다고 모욕했다. 과연 누가 세계에서 제일 거짓말 잘하는 민족인가?

그러면서 나고야 올림픽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일제에 맞서 같이 싸운 혈맹은 무슨, 건국 이래 친일 혐한이 대만의 정체성이었다. 일본에게 단교당하고 한국만 수교를 유지했을 때도 마찬가지, 아니 위에서 말했듯 더했다.

88 올림픽 개막식 날에선, 모든 나라 방송에서 한국의 성과를 감탄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대만 방송만 한국을 민도가 낮은 후진국이라고 욕했다. 자신들도 개고기 먹으면서 개고기 야만국이라는 말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한국에서 인도주의자, 인권운동가, 대만 문제 전문가로 자처하는 이들은 대만이나 중국의 혐한은 일절 무시하고 무조건 한국의 탓으로 돌린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인권이나 한국인이 받는 인종차별은 무시하는 게 목적인 이들이 한국 인권위며 인권단체를 차지하고 한국의 세금으로 활동하며 한국인을 교육의 명목으로 가스라이팅하고 있다.

이 모든 대만의 극렬한 혐한 인종차별을 다 참고 참은 끝에 92년에야 제일 늦게 단교했다. 대만에서는 대규모 혐한 시위가 일었으니, 단교 통보 후 2달이나 버텨서 참다가 강제철거했던 한국에만 가했을 뿐, 기동타격대가 출동해 대만 외교관들을 끌어낸 프랑스나, 몇 시간 전 전화로 통보한 미국, 제일 먼저 단교했던 일본에는 일절 하지 않은 짓이었다. 피해국이 가해국 클럽 아니라고 피해국을 차별한 것이다.

중국 식민주의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잘못이라 욕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대만의 혐한을 참고 참다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편의를 봐주며 단교했는데도, 지금까지 툭하면 태극기 찢고 불태우는 재미에 살며 한국 관광객 공격하고 한국 상가 공격하는 등 각종 야만 행태는 다 보인 대만의 혐한 죄악은 다음화에서 고발하겠다. 지금까지 보인 온갖 미개한 행태에도 아랑곳 않 대만 사람들이 가장 친절하다고 우기는 귀화자들의 가스라이팅 역시 결국 본인도 태극기 찢고 불태우는 극악한 혐한을 즐기니까 하는, 개념 없는 혐오와 차별의 논리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소위 친절한 대만 사람과 묵묵히 의무를 다하며 살아왔다는 대만 화교들의 민낯을 공개한다. 한국 세금 들인 그 모든 화교 관련 연구에서 결코 언급하지 않으며 학자의 양심도 같이 내다 버린 자들이 은폐한 그들 자신의 본 모습이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4&no=7756328&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