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그런 줄 압니다.
예를 들어 탄핵 촛불시위 나가면, 외신이 칭찬하거든요. 평소 한국인이라면 유전자부터 역사와 문화까지 혐오와 증오를 담아 쳐패던 한국 진보 언론도 갑자기 태세 전환하며 한국인을 칭찬하고요. 딤토더쿠여시엑스 이런 곳은 태세 전환하면서도 혐한 스포츠 못 참아서 혐한과 친한 짬뽕을 끓여 드럼통으로 마셔대는데 심지어 재밌죠.
물론 우리의 수준 높은 집회 의식은 당연히 훌륭하지만, 외국 진보 언론이 한국이 탄핵에 성공하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선동하는데 악용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 역시 모든 촛불시위에 나갔지만, 윤석열 탄핵이 이재명 당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소리는 그냥 세뇌입니다.
이미 박근혜 탄핵은 문재인 당선으로 이어졌고, 엄청난 궤멸을 가져왔습니다. 민주당에게도 좋지 않은 시절이었죠. 사실 윤석열을 당선시킨 건 문재인이었고, 또한 윤석열의 모든 실패가 민주당의 압승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에요, 로더럼 집단 아동 성착취 사건이 보수의 승리를 가져오면, 브렉시트의 실패가 진보의 승리를 가져오고, 그 다음에도 계속 되풀이되는 겁니다.
진보는 새로운 것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하지만, 민주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원전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으니까요. 보수라고 해서 민주주의에 반대되지도 않지요, 물론 가짜 보수는 예외지만. 정말 새로운 것은 공산주의였습니다. 세계 각국의 고대 문명만 해도 소위 평등 사회는 거의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진보가 한때 좀 더 인권을 중시하고 좀 더 민주적이던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사라졌으니, 진보 내 진짜 인도주의자들과 진짜 민주주의자들은 모두 숙청되고 가짜만 남은 거죠.
하지만 이건 우리의 주장일 뿐이니 진보의 주장을 들어 봅시다. 진짜 한국 진보의 인도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는 누구일까요?
단적으로 한국 진보의 양심이자 문재인의 멘토, 민주당의 영원한 정신적 스승 리영희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61120.html
민주주의, ‘젊은이의 피’와 ‘리영희의 혼’ 먹고 자랐다
시인 김지하는 ‘1974년 1월’이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했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고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왜 1974년 1월은 죽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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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예편과 동시에 합동통신사 기자가 된 리영희는 외신부에 배속돼 제3세계에서 벌어지던 피압박 민족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샅샅이 추적했다. 리영희의 관심은 특히 베트남전쟁과 함께 마오쩌둥의 현대 중국에 집중됐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대결 속에서 중국이 열어가던 제3의 길에 모였다.
한국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의 피와 함께 리영희의 혼을 먹고 자랐다. 리영희는 청년·학생·민중의 눈을 뜨게 한 ‘사상의 은사’였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나온 지 50년, 저자가 세상과 작별한 지 14년이 됐지만, 리영희의 꿈과 뜻은 후배·후학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 있다. 거짓이 활보하고 추한 권력이 위세를 부리는 시대일수록 리영희의 비판 정신은 민주·평화의 세상을 열망하는 함성 속에서 더 푸르게 타오른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52593.html
문재인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
우리시대 ‘사상의 은사’였던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회에 눈을 뜨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7일 오후 리영희 선생 빈소가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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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범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부일 사건’을 통해 사회의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선생님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다 읽었다고 하더라. 그것 보고 (노 대통령이) 의식화 되신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말했다.
문 전 실장은 “리영희 선생이 참여정부 기간에 진실과화해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아 과거사 정리 작업에 격려를 많이 해주셨고, 최근에는 노무현재단의 고문을 맡아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도움을 주셨다”며 “참여정부를 많이 응원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문 전 실장은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며 “개인적으로도 선생님을 통해 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지식인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을 배우고 큰 사표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리영희와 함께 화교 학교 교사에게 중국어를 배울 정도로 리영희 중국 연구의 사상적 후계자인 듯한 최측근의 말도 들어봅시다.
'제도 밖의 스승' 리영희를 만나다
리영희 선생을 떠올리면 대학 3학년생일 때인 1974년 서울구치소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긴급조치 1, 4호 위반(이른바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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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큰 인물"이라고 서술한 선생의 표현이 마오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고무찬양한 것이 아닌가 라는 검사의 질문에, '크다'는 것은 역할이 컸다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묘사"일 뿐이라고 선생은 답변했다.
우스꽝스러운 이 논란을 나는 그 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그 시대 중국 인식의 어처구니없음을 보여주는 예로 종종 제시하고는 한다.
나는 선생을 한국의 ‘비판적 중국연구’의 ‘뿌리’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중국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제기하거나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기보다 중국을 보는 냉전적 사고, 즉 선생이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이성으로서 치열하게 글을 썼고, 중국연구와 한국 현실변혁의 실천적 지향을 결합했다는 점을 중시한 것이다. 그래서 제도 밖의 '교사'요, 비판적 중국연구의 '출발점'으로 후학에게 평가받는다.
선생의 중국, 특히 문화대혁명 인식에 대해서는 선생 스스로도 성찰의 발언을 몇 차례 하신 바 있거니와, 진지하게 더 토론해볼 주제이지만, 무엇보다 선생의 실사구시적 글쓰기는 지금 더 소중하다. 이론 조작보다는 치밀하게 자료들을 찾아서 논증하는 방식은 비판적 중국연구자라면 응당 몸으로 받아들일 자세이다.
선생이 환갑을 맞아 가진 정담에서는 이학 계통을 공부했기에 "경제성, 치밀성, 구성요소 들을 치밀하게 갖추어서 그것을 빈틈없이 짜나가는" 사고가 "습성화된 것"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다.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의 안전 및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길"(<상고이유서>, 1978)이란 토로는 진영논리에 중국인식이 휘둘리는 지금이기에 더 곱씹어볼 만하다. 그래서 중국을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 본 선생의 중국관이 여전히 요구되지만, 이를 조금 보완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우리의 100년 변혁의 역사경험을 거울로 삼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이것이 비판적 중국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중국을 어떤 식으로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함께 변화하는 중국’으로 인식하고 중국(과 우리)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심 갖는 참여자 내지 연루자로서 접근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ㅡ왜 우리가 중국과 함께 변화해야 합니까? 우리가 중국과 함께 겪은 변화란 고조선 고구려 멸망, 을지문덕 살수대첩,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이었고, 중국과 단절했던 시절에 신라고 대한민국이고 더 잘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독립 주권 국가인데, 왜 <중국과 우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중국과 우리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로 묶어 놓고, 참여자 내지 연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연구할 뿐이고, 중국과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중국의 참여자 내지 연루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중국의 시각대로 한국을 변방으로 보며, 중심인 중국의 참여자나 연루자가 되는 삶이 어떻게 인도적이고 민주적입니까?
이렇게 물어 보면 리영희 재단은 물론 노무현 재단에게까지 명예훼손 고소를 당할 것 같은데, 우리야말로 그들을 고소하고 싶군요. 신이고 영웅이고 소크라테스인 리영희의 인도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검증해 봅시다.
엄청난 찬사에 이어 비판도 봐야겠죠.
[송재윤의 문혁춘추] 38회: "변방의 중국몽: 좌파 친중주의의 뿌리"
1. 1970년대 리영희의 “비판적 중국학”이란?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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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모택동 사망 직후, 리영희는 모택동이야말로 “인간의 평등과 인간소외의 해소·극복”을 위한 “인간우선주의”와 “인간중심 사상제일주의”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념을 제창한 위대한 혁명의 사상가라 찬양한다.
리영희는 또 모택동의 사망 직후 막을 내린 문화혁명(1966-1976)에 대해서도 “모든 사회분자의 인간애”에 기초한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이라며 격찬한다. 나아가 모택동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능가하는 인간제일주의 사상가라고도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모택동 인격숭배”(The Mao Cult)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스탈린과 달리 모택동은 74세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장강(長江)에 들어가 직접 수영을 했으며, “군중에 섞여 경극을 감상”하고, 틈만 나면 “군중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신격화라면 신격화를 달성했다”고 쓰고 있다.
리영희는 70년대부터 늘 선악과 흑백의 이분법을 지양하려 한다고 말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면서 사유의 균형을 강조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사유는 선악과 흑백의 이분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박정희 독재를 “악”과 “흑”으로, 모택동의 독재를 “선”과 “백”으로 생각했다. 과연 타당한 사고일까? 자유의 억압 정도, 인권탄압의 정도, 인신지배의 구체적 사례 등을 놓고 볼 때, 모택동 독재는 박정희 독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체주의 체제였음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모택동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찬양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전체주의의 옹호는 그 자체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승인일 뿐이다.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리영희는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근간으로 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악이며, 반자본주의 명령경제의 모택동식의 전체주의 독재는 선(善)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 어떤 사회과학의 이론을 끌어대도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좌파인텔리의 궤변일 뿐이다.
2003년 인터뷰에서 그는 1957년 이후 합동통신의 외신기자로서 “중국혁명의 전 과정”을 “리얼타임”으로 접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모국어만큼이나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세계학계의 견해를 흡수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과연 그렇게 외국어에 능통하고 다양한 정보를 리얼타임으로 접했던 사람이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중국혁명이 초래한 인권유린과 인간파괴의 현실에는 눈을 감았을까?
1965년,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시작되기 직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는 모택동을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에서 모택동은 말로에게 중국인구의 5% 정도가 “반혁명분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바로 그 5%에는 구체적으로 과거의 지주, 구(舊)부농, 구(舊)자본가, 지식인, 신문기자, 작가, 예술가와 그들의 자녀 등이 들어간다고도 했다.
1970년대 리영희의 중국관련 저서들은 대한민국 좌익 친중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도 리영희의 가르침에 포박당해 있다. 리영희의 중국학은 그러나 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공상적 신화작품에 지나지 않았다.
모택동은 “블랙리스트”를 미리 짜서 비판적 문화·예술인의 입을 막은 것이다. 물론 리영희는 모택동의 바로 그런 “블랙리스팅”(blacklisting)에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아니, 그보다 리영희는 바로 그 5프로의 “인민의 적”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95프로의 인민이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뒤집어 보면, 소수의 흉악하고 탐욕스러운 “적폐세력”만 암(癌)을 도려내듯 죄다 처단하면 나머지 국민은 바로 그 적폐청산의 과정을 통해서 “무적폐의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망념(妄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제정러시아 차르(Tsar) 정권은 1825년에서 1910년 사이 3,932명을 처형했다. 1주일에 한 명 꼴이었다. 반면 스탈린은 1937년-38년 사이 하루 평균 1천 명을 학살했다.
그런 현실 앞에서도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구미의 좌파 지식인들은 지속적으로 “스탈린의 위업”을 찬양만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였다. 스탈린에 숙청당한 볼셰비키 당원들을 보면서도 그는 스탈린을 찬양했다. 누군가 실무능력이 없는 그들의 “목에 밧줄을 묶어 사다리 밑으로 떨어뜨려야”했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그 당시 소련을 직접 방문했던 유럽 지식인들 중에 스탈린 독재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인물은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 밖에는 없었다. 1930년대 일시적으로 공산주의에 매료됐던 지드는 1936년 실제로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와선 <<소련으로부터의 귀환>>이란 소책자를 출간했다. 그 책자에서 지드는 혁명의 부속물로 전락해서 획일적 사유, 문화적 고립, 경제적 궁핍을 강요받는 러시아 민중의 참담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고발했다. 그 때문에 유럽의 좌익세력은 격분하여 “안티-지드”를 부르짖기도 했다.
프랑스의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1983)이 1955년의 역저 <<지식인의 아편>>을 집필한 배경이다. 유럽의 유수한 좌파지식인들은 그렇게 공산주의라는 달콤한 이념의 아편에 중독되어 공산전체주의 정권의 참혹한 실상에는 눈을 감았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어둠에는 극언의 비판을 일삼다가 스탈린 독재 아래서 죽어간 수 많은 인민의 고통에 대해선 침묵했던 것이다. 좌파 인텔리겐치아는 왜 늘 그렇게 정신분열적 행위모순, 이율배반적 허위의식, “내로남불”의 자가당착을 범해야만 할까? 유토피아의 이념에 눈이 멀어 인간의 현실을 외면한 결과는 아닌가?
리영희의 “중국 찬양”은 바로 그런 유럽 좌파의 스탈린 찬양을 꼭 빼닮았다. 리영희는 모택동이란 우상을 만들어 신나게 세일즈를 하고 나선 그 우상이 처참하게 망가진 후에도 애프터서비스를 거부한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좌파지식인이다.
바로 그런 “짝눈”의 리영희가 오늘날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절대적 우상이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 좌파 친중주의의 밑동이다.
돌이켜 보면, 거듭되는 문재인 정권의 외교참사의 밑바닥엔 편향되고 왜곡된“중국인식”이 놓여 있지 않나 싶다. 문대통령의 왜곡된 중국인식은 그 시대 운동권 세력을 지배했던 그릇된 역사인식에 기인한다. 리영희의 이른바“비판적 중국학”은 “현대중국의 아픈 역사”를 외면하고 역사의 실상을 왜곡한 맹목적 중국 찬양의 기록일 뿐이다. 오늘 한국좌파의 구루 리영희가 만든 공상적 중국신화를 깨기 위해서 우리는 모택동의 마지막 반란 "중국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의 참혹한 실상을 깊이 깊이 들여야 봐야만 한다.
ㅡ 이 주장에 대해 리영희 스스로도 문화대혁명에 대해 잘못된 말을 했다고 인정했답니다. 바로 문재인이 증인입니다.
https://www.economytalk.kr/news/articleView.html?idxno=148034
[팩트체크] 문재인은 왜 미국 패배·월남 패망에 희열을 느꼈을까 - 이코노미톡뉴스
[이코노미톡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5일 JTBC 대선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일심회사건, 군가산점, 나이 등을 놓고 격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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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후보는 이날 'jtbc 대선후보 4차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쓴 책 132면에 보면 '미국의 월남전 패배와 월남의 패망은 진실의 승리다. 희열을 느꼈다'고 기재돼 있다. 우리 장병들이 5천 명이나 죽었다. 공산주의가 승리한 것인데 희열을 느꼈다는 것이냐"고 일침을 가했다.
다음은 '문재인의 운명' 131~132쪽 전문.
대학 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그 무렵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리영희(한국에서는 이영희라고 쓴다) 선생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미국의 주장을 진실로 여기며 상대편은 무찔러 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해 버리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겨주는 것이었다.
ㅡ그렇다면 중국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중국의 주장을 진실로 여기며 상대편은 무찔러 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해 버리는 건 문재인과 민주당의 허위의식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문혁과 대약진은 물론 마오쩌둥의 모든 피해자들 인권을 발가벗겨 버렸던 거죠.
그래서 코로나 때건 중국 은행 편법 대출 한국 부동산 투기건 중국 불법 어선 조업이건 중국 어선 해양 쓰레기 무단 투기건 산업 기술 유출이건 군사기밀 유출 같은 중국 간첩이건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여, 절대 대처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에 반대하는 한국인들은 아무리 많아도 혐중 정서 운운하며 무찔러 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하는 겁니까?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것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진실을 억누르는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1, 2부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
적어도 글 속에서나마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는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리영희 선생에게 질문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 오류가 아니었는지"라고. 그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오류였다. 글을 쓸 때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 그 시절은 역시 자료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때는 정신주의에 과도하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 솔직함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ㅡ이게 바로 앞서 기사에 나온, <경제성, 치밀성, 구성요소들을 치밀하게 갖추어서 빈틈없이 짜나가는 습성화된 사고에 기반해, 치밀하게 자료들을 찾아 논증하고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잡힌 과학적 인식 능력을 배양하는 비판적 중국 연구자의 자세>입니까? 심지어 저 표현 상당수가 자화자찬입니다. 정말 리영희가 중국에 대해 치밀하고 정확하고 균형잡힌 과학적 인식능력을 가졌다면, 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었을 때, 문화대혁명을 칭송하는 그런 망언은 하지 말았어야죠. 그런데 리영희나 그 사도들이나 생각하는 수준이 똑같습니다. 자화자찬.
진실의 승리라며 한국군과 미군 사상자들은 물론, 베트남 정부가 승리 후 저지른 무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고 뭐고 쾌감에 젖어 짜릿해하면서, 정작 그 승리자가 더 많은 희생자들을 낸 문혁의 진실은 왜곡하고 거짓을 말하며 진실을 억눌러 왔다는 허위 의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존경스럽답니다.
군 통수권자란 자가 자국군 희생을 무시할 정도로 쾌감을 느낄 정도로 진실을 추구한다면, 그 진실의 승리자가 지닌 허위의식과 반대편은 찔려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했다는 진짜 진실이 드러났을 때는, 왜 그렇게 기괴한 반응을 보입니까? 진짜 인도주의자고 민주주의자라면, 중국의 진실 앞에서 미국의 진실이 드러났을 때와 똑같이 분노하고, 회한을 느끼며 비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냥 미국이 패해서 쾌감을 느꼈던 게 아니고?
실제로 리영희를 우상숭배하는 진보가 문화대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한국 수준을 천박하다 욕하는 그들 인도주의의 수준이야말로 계속 알아봅시다.
[중국 문화대혁명 50주년]<상>“난 살인범” 평생 자책…홍위병도 ‘문혁’ 광기의 희생자였다
충칭대·충칭사범대 등 10여개 대학이 몰려 있는 중국 충칭(重慶)시 샤핑바구. 이곳의 한 공원 구석에는 문화대혁명(문혁) 때 숨진 홍위병들의 무덤이 있다. 중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홍위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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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홍위병들의 아픔은 개인적 경험으로 치부됐으며 문혁은 제대로 평가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ㅡ홍위병이 가해자가 아니라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경제고 외교고 내치고 다 망가뜨린 문재인 때문에 윤석열 지지한 사람들을 (물론 우린 안 찍었지만) 2찍이라고 찍찍대면서 홍위병 한국멸망소취단 노릇 하나봅니다. 진보의 가해자중심주의와 피해국 혐오는 악명 높죠. 그냥 뇌리에 무슨 종양처럼 박혀 있는데, 그것마저 리영희식으로 정신주의라고 미화합니다.
마오쩌둥도 두려워한 ‘극좌파 홍위병’을 찾아서
문화대혁명과 극좌파-마오쩌둥을 비판한 홍위병 손승회 지음/한울아카데미·4만원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은 많은 사람에게 현대사의 악몽으로 인식되는 사건이다. 수많은 지식인을 숙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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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혁이 50년도 지난 지금, 이제는 그런 악몽에서 깨어나 역사적 사건으로서 문혁을 바라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손승회 영남대학교 교수(역사학)의 <문화대혁명과 극좌파>는 이렇게 ‘반면 교훈으로서의 문혁’이나 ‘광기의 문혁’에서 벗어나 “역사로서의 문혁”이란 관점으로 문혁을 바라보는 역사학 저작이다. 이런 관점에서 손 교수는 문혁의 극좌파들을 주목한다. 마오쩌둥이 제시한 문혁의 이념에 충실하다 못해 결국 마오조차 앞질러가 버린, 그래서 결국 문혁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버린 극좌파의 궤적을 다양한 사례 연구로 되살려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ㅡ왜 문혁의 가장 큰 희생자가 당시 죽어간 수백 만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누누이 말했죠? 진보는 피해자의 인권 따위 앞장서서 짓밟는 이들이라고, 가해자중심주의와 피해자 혐오가 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걸 학문화시켜 버리는 게 진보입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부터 광복까지 화교와 장쉐량 중국 군벌과 중국 국민당 정규군이 저지른 만주 조선인 마을 학살 인종청소부터 한국 전쟁, 심지어 지금의 각종 살인으로 희생되는 한국인들 인권은 늘 유린하면서, 수십 년만에 중국 가란 말 들었다고 난리 치는 중국인의 권익만 한국 세금으로 챙기고, 피해자를 나치로, 가해자를 유태인으로 모는 희대의 사기를 절대진리로 숭배하는 거죠. 그 희생자에서 문재인 코로나 정권 희생자들은 빼겠습니다. 중국인들이 우한 코로나를 퍼뜨렸지만, 중국인들 무료치료해주겠다고 중국인 입국 금지 결코 안 한 문재인의 잘못이 더 크니까요. 문재인 정부고 지지자고 중국 입국금지가 모든 나라에 다 통하지 않았다고 한겨레식 가짜뉴스와 궤변을 늘어놓지만, 안 한 나라가 코로나 극복에 성공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손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그동안 문혁 연구는 서구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해 왔지만, 최근엔 중국에서도 다양한 입장의 문혁 논의가 등장해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 문혁을 선정적으로 단순화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담론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문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현대 중국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ㅡ진보 자신들 문제를 또 한국에 덮어 씌우네요. 선정적으로 단순화한 정도가 아니라 미화하고 정당화한 리영희의 학문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노무현/문재인 두 정권이 탄생했는데, 이게 정치적 담론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한국에 문혁 피해자들 인권을 유린하는 자신들 죄를 한국에 누명 씌우고 있는데, 결국 리영희의 말이 옳았다, 취지는 좋았다, 가해자들도 역사의 희생자~~ 운운하는 저의야말로 이미 너무 잘 이해 갑니다. 이렇게 가해자도 역사의 희생자라고 보면, 나치 친위대 장교들도 일본 전범들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 무죄겠네요? 유엔군과 미군의 요구로 유엔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이어서 한국군 위안부 만든 한국군은 유죄라는 진보가 중국이나 일본 같은 가해국들에게는 아주 정당화 미화를 넘어선 우상숭배를 해댑니다.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war-crimes-trials
전후 재판
encyclopedia.ushmm.org
명령을 따랐을 뿐인 군인도, 개인의 책임이 강조된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념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을 자의로 살해한 학살자들이 피해자라는 게 인도주의고 민주주의입니까? 그걸 인도주의고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게 진보라면, 파시즘을 베낀 거죠. 진짜 나치는 자신들이니까, 서강대 중국 문화학과 교수처럼 비폭력 반중 시위 가지고 한국인들에게 나치 누명 뒤집어 씌우면서, 중국인 범죄의 한국인 피해자들 인권은 짓밟는 거죠.
무식해서 사악한 건지, 사악해서 무식한 건지, 결국 위안부며 한국 징용 피해자 강제 연행한 일본군도 역사의 피해자 운운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러니까 진보 인사가 위안부 기부금 횡령해서 일본 과자나 사먹는 추태를 벌이는 겁니다.
이렇게 일본 우익의 주장을 베끼는 것은 동학운동이 그 뒤에나 일어난 중국 태평천국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그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오로지 한국사를 중국사에 엮어서 어떻게든 공동운명체론을 주장하려는 리영희식 동북공정을 행한 것과 똑같습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4/11/16/SPM2PIRDKZAR3GBNZOIAPF3LDE/
리영희, 무지와 편향으로 文革 찬양
리영희, 무지와 편향으로 文革 찬양 1974년 출간 전환시대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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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 기간 중국에서는 공식 사망자 170만명, 추정 사망자 2000만명이 발생했고 1억1300만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리영희는 문혁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집필한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전혀 다른 논지를 펼친다. 그는 문혁에 대해 ‘인류 사상 초유의 일대 실험’(86쪽, 이하 2006년 2판 기준)이라고 소개한 뒤 ‘인간을 개조하고 평등한 인간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 구조를 창조하려는 것’(96쪽)이라는 마오의 말을 인용하며 높이 평가했다.
이어 ‘세상에 하나의 경이로 비치고 있는 현대 중국의 건설’(173쪽), ‘홍위병의 공개 비판은 서구식 민주주의와도 일치하며 중국에선 1인 독재를 생각하기 어렵다’(182쪽)고 했다. 심지어 문혁 이후 실각하고 처벌받은 악명 높은 ‘4인방’에 대해서도 ‘유능한 인재로서 향후 중국의 지도부가 될 것’이라는 잘못된 예언까지 했다. 운동권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거하고 반공 우상을 깨부쉈다’고 평가하는 리영희 중국론의 실체는 사실 왜곡이었다.
책의 논리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서구 문명과 다른 독자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마오에 대한 개인 숭배가 정당하다는 사대주의적 입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중국 근대화 투쟁의 사상적 기조는 서구 문명의 부정과 극복’(154쪽)이라 쓰면서 ‘성왕(聖王)의 이상과 그 밑에서의 평화와 대동(大同) 사상은 모택동 숭배 현상을 이해할 근거가 돼 준다’(156쪽)고까지 적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굴종적 태도는 이 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ㅡ제일 어처구니 없는 건 이 책이 2006년에 나온 개정판이라는 겁니다. 문혁이 끝난지도 오래됐고 이미 문혁의 진상이 다 알려진 이후였는데도, 문혁에 대한 자신의 허위의식을 전혀 고칠 생각 없이 당당하게 써놓은 겁니다. 이게 심지어 나름 수정을 거쳐 나왔다는데, 문재인에게 오류라고 했다는 가장 치명적인 거짓은 전혀 안 고친 겁니다. 그런데도 학자의 양심을 걸고 그걸 오류라고 인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책에서 문혁 관련 거짓을 전혀 고칠 필요 없다고 여긴 창비가 대체 얼마나 찬양하는지 바라보죠. 창비 서평입니다.
1970년대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현대적 고전. 중국관계, 베트남전쟁, 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분석해내는 저자의 번뜩이는 필치는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줌으로써 당시의 한국사회에 만연한 허위의식을 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ㅡ한국 사회에 허위 의식이 만연한 게 아니라 본인들이 더 큰 허위의식을 전파 시켜놓고 그걸 깼다고 자처하는 겁니까? 하나의 거짓을 타파하는 건 좋지만, 그걸 더 큰 거짓으로 덮어 씌우는 건 거짓이 아니란 겁니까? 이러니까 진보가 민주주의 아니라고 스스로 실투하는 거죠.
이 책은 박정희 군부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본격화하던 1974년 봄에 출간되었다. 이런 때에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회주의 중국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고, 베트남전쟁, 일본의 재등장, 한미관계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냉전적 허위의식을 타파하는 현실인식, 편협하고 왜곡된 반공주의를 거부하는 넓은 세계적 관점, 냉철한 과학적 정신을 계몽하고 민주적 시민운동에 앞장서는 이론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ㅡ이 책은 마오쩌둥이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낸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책임지긴커녕 국민의 살 권리를 죽을 떄까지 박탈하다가 마침내 사망하기까지 끝나지 않던 문화대혁명이 드디어 끝나던 1974년 봄에 출간되었다. 이런 때에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회주의 중국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긴커녕, 그 희생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마오쩌둥처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기존 중국 권력층의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냉전적 허위의식을 한국에까지 전염시키는 허위인식, 편협하고 왜곡된 현지인 차별과 혐오주의를 전파하는 좁은 중국식 관점, 역사상 가장 많은 자국민 희생자를 낸 독재자에 대한 비겁하고 천박한 비과학적 우상숭배를 퍼뜨리고 반민주적 혐한을 한국 민주주의에 퍼뜨려, 중국의 앞잡이에 이론적 사상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하겠다.
리영희와 문재인의 직접 피해자들인 우리 같은 한국 인민의 목소리니, 그들의 썩어빠진 친중 혐한이나 계몽하기 바랍니다.
한상일 국민대 명예교수는 “당시 일본 좌파 잡지 ‘세카이(世界)’ 등이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과 북한을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본 논지가 리영희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했다.
ㅡ논지는 일본 좌파 베끼고, 사고방식은 유럽 좌파 사상가의 비열함을 베끼고, 한국사 보는 시각은 중국 우익 베끼고, 정말이지 치밀하게 짜맞춘 표절의 향연입니다.
4천500만명 죽음으로 몰고간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57년 소련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모스크바에서 외국 당 대표단을 앞에 두고 15년 안에 소련이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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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문화대혁명보다 더 큰 4500만 희생자를 낸 대약진 운동은 왜 오류가 아닙니까?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는 리영희지만 문혁 관련만 그랬을 뿐 마오쩌둥에 대한 실제 입장은 하나도 정정하지 않았는데, 왜 문혁만 문제 삼는 겁니까? 마오쩌둥 숭배는 결국 대약진 운동 실패 정당화이기도 하며 그 피해자들 인권 유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리영희가 대약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대약진을 논외로 두면서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일 자체가 반민주주의 비인도주의죠.
문재인은 왜 이 문제는 리영희에게 묻지 않았습니까?
문혁 칭송은 수백만 희생자에 대한 사죄 전혀 없이 대충 오류였다고 넘어가고 마오쩌둥 우상숭배를 이어가야 하는데 과학적 인식능력을 주장하려면, 너무 치밀한 반증이 되니까? 문재인과 리영희 모두 수천만 명이 죽건 말건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숭배를 위해 민주주의고 인도주의고 내다 버렸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에 대해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걸 과학이라며 절대진리로 숭배하는 민주당이 왜 그렇게 중국에 목매고, 그 지지자들이 한국 멸망 소취를 외치는지 너무 이해 잘 갑니다. 중국과 함께 멸망하는 한국이, 민주당과 문재인의 중국몽인 거죠.
그럼 과연 리영희의 비판적 중국 인식이 그가 주장했듯 과연 옳은지, 최소한 과학적인지, 그 자신의 글에서 드러나는 진보식 인도주의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삼아 다음화에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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