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보다 더 유구한 일본 역사 왜곡 문제를 다루겠다.
https://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6166
위안부 문제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라는 피해국 여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데, 위안부 강제 연행이 없었다고 그가 들이댄 증거를 살펴보자. 출처는 소나무당의 변희재가 만든 미디어워치로 일본 극우 정치인에게 사과 말고 칭찬 받고 싶다는 아첨 떠는, 어딜 봐도 잔류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일본 숭배가 속속들이 배어든 재한 일본 극우 언론이다. 이런 자들을 전부 매국노로만 보는 것도,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가해자중심주의 누명 프레임이다. 소나무당이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면 실화에 바탕한 조선족 영화도 명예훼손에 패소하는 판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그 모든 명예훼손을 고발할 것이다.
다음은 하타 이쿠히코의 주장을 나열한 것이다. 우리의 반박을 달아둔다.
1. 시효가 없는 사후입법과 정황 증거만 갖고 일본의 ‘관여자’만이 처벌된다면, 도쿄재판과 BC급 전범재판, 한국에서의 광주사건 또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일본은 여성을 강제 연행해서 사창가에 가두는 게 죄라는 인식이 없어서 법도 없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는 도쿄재판, BC급 전범재판, 광주사건이고 뭐고 전부 재검토 찬성한다. 일본군 장병도 명령을 시행했을 뿐이라며 난징 학살이고 제암리 학살이고 연합군 포로 인육 먹기고 뭐고 아무것도 기소되지 않았는데, 조선인 군속들은 시켜서 했을 뿐인 연합군 포로 홀대만으로도 처벌받았던 불합리도 이번에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일본 다문화여도 전부 조선인으로 호적에 기재됐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소위 그 조선인 군속이며 순사였는지도 다 파헤쳐야 한다. 무슨 역사학자가 사건 재검토해야 한다는 걸 반증으로 삼는가? 다른 나라 역사학자들은 모든 역사적 사건 재검토를 자신의 연구 주제로 삼는 판에 참 대단한 일본 역사학계의 전설이다. 게다가 광주 사건 재검토도 당연히 찬성이다. 그걸 왜 한국인이 꺼릴 테니 한국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문제로 보는지도 코웃음이 나온다. 한국군 위안부 문제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의 출처나 그 논리의 원류가 여기였구나 싶기 때문이다.
역사적 비극은 새로운 증거 발견될 때마다 전면 재검토하고 문제를 끝없이 제기하는 게 역사학의 의의인데, 우리 치부를 안 덮으면 너희 치부도 들춰내겠다는 게 일본 역사학이다. 이런 일본 정신의 코로나가 아이비리그 포함해 전 세계 역사학계를 오염시키니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도 폭격기와 독가스가 난무했다는 학살이며 남베트남 정부군 5개 대대가 현장에 있었다는 학살을 대체 미군이 한 건지 한국군이 한 건지 남베트남정부군이 한 건지 북베트남 정부군이 한 건지 베트콩이 한 건지 제대로 조사가 안 이뤄지는 것이다.
2.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기억에만 의존하는 애매모호한 것이라 검증할 방법이 없다.
사춘기 소녀 때 일로 스스로 증거가 없다고 말한 요코 이야기는 로비를 통해 미국 교과서까지 수록한 일본이, 자신들의 피해자들 증언은 위안부고 호주 비행사 같은 연합군 포로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게 일본의 양심 수준이다.
이 여성학자는 강제 연행된 사실을 증언한 노청자 같은 위안부 피해자의 말은 무시하면서, 어느 두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비슷하니 시나리오라고 치부했다. 아니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겪었으면 비슷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 못하면서 학자이긴 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시나리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조작한 학자들이 썼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은 유물도 조작했고, 방송국도 한국인들은 물론 소녀상 철거를 거절한 이탈리아 시장의 인터뷰까지 조작한 사례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빙성은 일본이 없는데, 피해자들에게 누명 씌우고 있다.
3. “그러나 사실 그녀들은 업자들 입장에선 전차금을 지불한 장사도구였고, 군 입장에서도 병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존재이니, 그에 알맞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이는 위안부들이 많이 증언한 일본군 학대 행위에 대한 하타 이쿠히코의 반론이다. 매춘부도 학대 받지만 강요된 성매매일 경우 학대가 더 커진다는 건 상식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핵심은, 하타 이쿠히코 스스로 그녀들을 장사도구라고 칭하면서, 그에 알맞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 주장하며 자신의 인권 개념을 폭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본이 군함도와 사도광산의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가한 학대와 만행을 부인할 때도 쓴 일본식 변명이다. 위안부나 강제징용피해자나 일을 시켜야 하니 잘 해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시관이나 하타의 책에 그렇게 기록돼 있다. 소름 끼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억지로 끌고 온 노예건 장사도구건 서비스 제공 존재건, 뭐가 됐건 잘 해 줄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사람을 도구로 보는 괴물들이 사람에게 잘 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냥 안다. 그게 인류의 관점이고 개념이다. 그냥 문명 사회에서 동떨어져 사는 소수민족에게 네가 싫다고 해도 널 데려갈 텐데 대신 너에게 일 시켜야 하니까 잘 해주겠다고 말하면, 그들조차 속지 않을 것이다. 그 간단명료한 진리를 일본만 모른다. 적어도 하타 이쿠히코와 그 독자들, 사도광산과 군함도 문제에 관계된 모든 이들, 일본 극우들, 소수가 아니라 일본 대다수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들 전원이 모른다. 그러니까 억지로 혹은 속아서 데려왔어도 일을 시키느라 잘해줬다고 말만 하면, 자신들을 제외한 인류 전원이 믿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를 무시해서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정치적 올바름에 스스로 속아서인가.
실제로 일본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하타 이쿠히코의 말과 달리 일본은 장사도구건 노예건 서비스 봉사자건 단 한번도 잘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유민이라는데 유곽에 팔리면 평생 성노예였고 한국 기생이나 유럽 매춘부처럼 부유해지지도 못하고 평생 학대당하다 죽으면 멍석에 말려 길거리에 버려졌다. 포르투갈 선박들이 일본 여성들을 자유민이 아닌 노예인 줄 알고 자신들도 노예 무역에 가담하려다, 우리는 해도 되지만 너희는 안 된다는 일본의 궁색한 변명에 당했다는 사건은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그런 후에도 계속 성노예로 내다 팔았다는 것이다. 19세기 애국자라고 칭찬하던 가라유키 상은 송금 후 일본에 돌아갔을 때 푸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외국에서 일본인 포주들과 일할 때도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고 장사 도구에 대한 일본식 대접을 받았다. 심지어 유곽이나 큰 가게의 주인 같은 자유민들도 낭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비무장 상태에서 칼을 맞았다. 그들이 낭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고, 비무장 상태에서 사무라이의 심기를 일부러 거스를 리 없는데도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일을 시켜야 하니까 잘해줬다는 말을 태연하게 한다. 유물이나 외국 정치인 인터뷰 조작처럼 거짓말인가, 아니면 온갖 고문이고 학대고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장사도구에게 하는 짓이라면 일본식 기준으로 잘 해주는 게 맞기 때문인가. 일본의 진짜 지성과 양심이 대답할 문제다.
또한 여기서 일본 자유민 부모들이 마비키 같은 영아살해를 하는 것도 모자라 딸을 유곽에 돈 받고 성노예로 파는 일이 하도 성행해서, 한국을 비롯 다른 나라 부모들도 그랬으리라고 당연한 듯 착각하는 일본 특유의 논리도 덧붙여 둔다. 하지만 일본 군의관의 기록에서도 나왔듯, 그들이 일본에 많은 매춘부가 아니라 한국 소녀들을 원한 이유가 일본보다 처녀가 많다, 즉 매춘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한국 부모들은 딸을 일본 부모처럼 유곽에 팔기는커녕 처녀공출이란 말이 나도는 가운데 조혼을 시켜버렸다. 우리 중에도 <정신대 끌려간다>는 이유로 결혼한 할머니를 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이고 일본이고 중국이고 딸을 나이 많은 부유한 권력자와 결혼시키는 일은 역사 내내 수도 없었고, 부모나 남편이 아닌 여성만 골드 디거니 뭐니 비하어로 비난받았지만, 조선은 딸을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시키면 남자는 남자대로 도둑놈이라고 욕을 먹고, 부모는 부모대로 딸을 후처로 팔았다고 욕먹었다. 이런 풍습이 있는 건 조선뿐이었고, 지금도 한국에는 그런 전통이 남아서 도둑놈이라는 말을 여전히 쓴다. 외국인들이 나이 많다고 차별하면 안 된다고 지적해도 바뀌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조선 풍습 같은 실상은 일본 학자라면 무시하거나 조작하니까, 아예 조사도 하지 않고 일본 부모가 딸을 돈 받고 유곽에 팔았으니까 다른 나라 부모들도 그랬다는 일본 풍습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을 위한다면서 일본의 과거를 들춰내서 일본의 망신을 시키는 건 대체 누구인가.
4. 위안부 모집은 민간업자가 많이 했다면서도 행정당국자와 군 관계자가 직접 모집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하타 이쿠히코 역시 인정한다. 제암리 학살도 모자라, 일본 패망 후에도 미군과 광복군에 총구를 들이댔던 일본군이 반항하는 조선인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일만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이런 부조리는 이쿠히코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5.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했다>는 내용의 고노 담화를 지적하며, 이 한 줄 때문에 모집에서 관헌이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것 같다는 인상을 남겨버렸다고 주장한다,
대체 이 일본인은 일본말은커녕 언어나 논리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는 것인가? 위안부 모집책의 감언 말고도 강압이 있었고, 그 강압은 앞서 자신도 인정한 일본군과 관리가 저지른 것이니, 강제 연행이 성립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강압을 저질렀으면 강제 연행이고, 일본 정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가 많으니, 계속 부인할 수도 없어 교토식 화법으로 최대한 우회적으로 표현했는데, 그런 표현 한 줄 때문에 잘못된 인상을 남겼다고 우기는 게 너무나 수준 낮다. 유엔 보고서를 욕한 본인 표현대로라면 이 연구도, 아니 논리학부터가 낙제점이다. 고노 담화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식인데, 강제 연행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하타 이쿠히코 자신의 논리나 돌아봐야 한다.
6. 평생 자신들이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을 사과한 적도 인정한 적도 없는데다, 일왕의 항복 선언까지 어기고 미군과 광복군에 총구를 들이대어 착륙을 막은 후, 위폐 찍어서 초 인플레 일으키고 조선은행에 대출 강요해서 그동안 수탈한 것도 모자라 금이며 문화재까지 싹 다 쓸어가고 한국인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끼치고 한국 분단까지 초래한 조선총독부 관리 두 사람이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했다.
조선총독부나 그 관리들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부인이야말로 사실에 대한 증거임을 알 테니, 제암리 학살도 부인한 게 조선총독부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제 사회의 비난이 일자 아리타 중위 단 한 사람을 재판에 붙였다가 무죄 방면했다. 사도광산도 군함도도 강제징용 없었다는 이들이다. 조선총독부 관리들을 증인으로 삼는다는 사실 자체가 하타 이쿠히코가 얼마나 정확한 역사가인지 보여준다. 조선총독부 말이라면 다 믿으니 그들이 부인한 제암리 학살도 부인할 역사가니 말이다. 삼지어 당시 순사가 거의 조선인이었다고도 주장하는데, 제암리 학살 때도 조선인 순사보는 한 명이었고, 학살에 일본인 민간인까지 가담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고 여기지만, 하타 이쿠히코가 떨어뜨린 일본인들의 이해력 증진을 돕고자 계속 반박하자면, 이들은 당시 강제연행이 있었다면 폭동이 있었을 테고 그랬으면 종전에 무사히 귀국도 못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증언에서도 제암리 학살을 부인하고 있다. 한국이 삼일절 같은 평화 시위를 벌였을 때도 무수한 폭력 진압을 해서 많은 사상자를 낸 것도 모자라, 아예 교회에 마을 주민들을 밀어넣고 불을 지르고 탈출해도 총살하는 판에 무슨 수로 폭동을 벌인단 말인가? 게다가 종전 후 무사히 귀국만 한 게 아니라 광복군 미군 합동 작전도 막아서며 시간 벌어 위폐 찍고 초 인플레 일으키고 미군들이 춤추는 댄스홀 열어서 로비해서 조선 은행에 대출까지 뜯어가서 갚지도 않는 등, 온갖 수탈 범죄는 다 저지르고 갔다. 일본군이 항복도 거부한 채, 미군이 오기까지 치안을 담당했는데 한국인이 무슨 수로 저항한단 말인가? 미군 와서도 일본 로비 때문에 미군들은 댄스홀에서 춤이나 추고 하지는 조선은행에 대출을 강요하건 금이며 문화재를 쓸어가건 하지즘을 구축해서 자신 이후로도 미군 가는 곳마다 다 망치는 전통을 수립하고자 난리였는데, 그런 실제 사실은 전부 배제했다. 그냥 이미 말한 조선총독부 관리가 당시 만행을 애국이라고 자랑한 회고록이나 미군정 기록만 봐도 알겠다. 무슨 증언이 있으면, 특히 그것이 가해국 증언이면 반대 사료를 찾아 대조해서 검토해야 하는데, 명색이 학자가 그런 걸 할 줄도 모르거나, 할 의지 자체가 없다. 윤리를 버리니까 논리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7. 소나무당 소속 변희재 대표의 미디어워치에서 주최한 위안부 심포지엄에선 소위 조선인인지 일본 다문화인지도 알 수 없는 군속들이 일본 편을 들며 여자들이 끌려가는데 가만 지켜 볼 남자들이 어디 있겠느냐고도 반론했다는 점을 증거로 들었다. 평화 시위만 해도 학살당하는 판에 무슨 수로 막는가? 특히 그 가만 지켜 볼 리 없다는 남자들도 강제징용이니 징병으로 군인으로 노동자로 전쟁에 끌려가서 그 자리에 없었는데 무슨 수로 지켜본다는 건가? 결국 이는 강제연행을 부인하면서 강제징용이나 징병도 같이 부인하는 일본식 술수다.
네덜란드 위안부 강제 연행 문제만 해도 일부 군인의 탈선이라는 조건을 달고 인정했지만, 역시 자가당착이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서도 강제연행하는데, 삼십 년 간 수탈하며 광복 이후까지 위폐 찍을 정도로 떵떵거리며 살았으며 일본 민간인까지 제암리 학살에 참여할 정도로 악랄하게 억압했던 조선에서는 강제연행을 안 했을 리가 없다. 역시 일본만 믿을 소리다. 일본만 속을 소리다.
네덜란드가 저항했지만 조선은 저항하지 않았으니, 네덜란드만 강제 연행이라고도 하는데, 네덜란드야 삼일절 폭력 진압이며 제암리 학살, 30년 간 수탈과 억압, 독립운동 탄압, 강제 징용 강제 징병, 위폐와 초 인플레 같은 만행을 겪지 않아 저항할 수 있었지만, 남자들이 조선처럼 강제징용이나 징병되지 않고 수용소에서 여자들과 같이 있던 그들 역시 네덜란드 위안부 강제 연행을 끝까지 막지 못했다. 일부의 탈선도 아닌 게 43년부터 44년까지 여러 수용소에서 장교들이 직접 주도한 강제연행이었다.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소녀들 대신 나이 많은 여자들의 자원을 받아야 했다. 그럼 소녀들 대신 희생을 무릅쓴 여자들의 자원이니까 강제 연행이 아니란 말인가? 일본군이 강요하지 않았으면 자원도 안 했을 텐데?
애초에 증거 채택부터가 부정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강제 연행 당했다는 증언은 여럿이 있어도 기억에만 의존하는 애매모호한 것이라 검증할 수 없다며 증언으로 인정하지 않는 주제에, 조선인인지 일본 다문화인지 아니면 그냥 일본에 유리한 증언을 하고자 조선인이라 우겼을지도 모르는 자의 증언은 마찬가지로 검증할 방법이 없었을 미군 보고서에 있으니까 신뢰성이 있다니, 그보다는 유엔의 열 개 넘는 보고서가 더 믿을 만하다. 심지어 그 보고서들 중에서도 하나밖에 반박 못했는데, 그 반박도 일본 역사학계가 유물을 조작했다가 전 세계에 들통났던 대망신 수준으로 이것이야말로 <낙제점>이었다. 이 천박한 말은 우리가 한 말이 아니라 일본 역사학계의 대가가 한 말이다. 조선이 아니라 <반도>라는 말을 일본 유력 월간지에 정식 게재된 기사에서 대놓고 하는 사람답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인간성이고 지성이고 바닥이 드러난다. 그 바닥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해대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이 보증하는 일본인들의 인성 수준을 알아 보자.
“영장 한 장에 처자를 두고 소집되어 싼 급여로 전쟁에 끌려가 아사한 다른 전우들을 생각하면, 그녀들(위안부들)의 사정은 그나마 좋았던 것 아닌가” 이쿠히코가 직접 취재했다는 일본군의 발언이다. 무슨 급여 말인가. 어차피 전표였던 데다 위안부고 징용자고 그들의 봉급이 가족에게 전해졌다는 증거야말로 확실치 않다. 그런 증거들이야말로 <애매모호한 것이라 검증할 수 없는 증거>다. 게다가 위폐 찍어서 초 인플레 일으켜서 전표 다 휴지 조각 만들었다고 앞으로 대체 몇 번이나 더 설명해야 하는 건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인데 자신들이 한 짓을 기억도 못하면서 과거를 자꾸 들춰내니까, 당연히 늘 자가당착 결론밖에 안 나온다.
급여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이 일본군의 발언은 정말이지 잔혹하고 매정하며, 일본의 반성이 얼마나 거짓인지 역력히 보여 준다. 어떤 병사는 위안부들에게 모금할 뜻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쿠히코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모든 반박자료를 제공해 줬듯 일본군의 진의를 폭로한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전쟁책임이나 전후보상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를 몰아세우는 소재로 쓰려는 일부 NGO운동가나 언론의 행동에 반감이 생긴 전 병사들은 이러한 활동을 외면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여성기금의 모금 상황도 좋지 못하고, 하시모토 총리가 가족의 저금통마저 털었으나, 신문광고의 게재료에도 못 미치는 1억 엔 정도 밖에 모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목표인 10억 엔에 도달하지 못할 듯 하다.”
일본과 와패니즈를 제외한 전 인류는 일본군 병사들이 말로만 모금하겠다고 하지, 진심으로 낼 생각은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자라면서, 진짜 전쟁의 피해자들이 아니라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를 편든다. 일본이 한국보다 부유했던 시절이 그토록 길었는데, 선진국도 되기 전 한국이 일본 대지진 때 인도주의와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모금한 액수에 비하면 형편없기 짝이 없다. 실제로 말해 준 건 이쿠히코가 처음인데 쓴웃음이 난다. 신문 광고 비용도 안 되는 액수를 가지고 그렇게 고마워하라고 재한 일제 세력에게 가스라이팅당해야 했단 말인가? 그리고 모금 액수가 형편없으면 일본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데, 왜 그걸 외부의 잘못으로 돌리는가? 하도 누명 씌우기가 보편화되다 보니, 일본의 수치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한다. 유엔 보고서고 다른 학자들이고 다 낙제점이니 뭐니 천박하게 욕하려다 자신과 일본의 바닥이나 노출시키는 이유다. 인권 개념이 보편적 인류애와 다른 나머지, 피해자들에게 <장사도구니까 그에 알맞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며, 그것이 <살해나 상해 당하지 않았을 증거>로 보는 희대의 반인륜 사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평생 그렇게 믿고 살았으니, 뭐가 잘못인지 모른다. 왜 우리가 문제 삼는지도 이해 못 한다. <사람이 장사도구>, 무릇 인간이라면 의문을 제시할 시점에서, 그것으로 설명이 된다고 논의를 끝내기 때문이다.
이게 일본 반전주의의 실상이다.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들을 우상숭배하는 게 그들에겐, 그들에게만 당연하며 전혀 모순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가미사카 후유코 씨가 4년 전에 염려했던 것처럼, “나중에 남겨지는 것은, 결국 온 천하에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폭로되어버린 가련한 노파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유코건 이쿠히코건 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피해자들을 정말로 존중했다면 저렇게 듣는 사람의 낯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천박한 말을 피해자들에게 할 수 있었을까. 프라이버시란 피해자가 됐을 때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것일까. 괴로웠던 과거를 스스로 증언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서 사과받고 싶다는 피해자의 소망을 왜 모르는 걸까.
대체 인간성이 얼마나 부재하면 학자로서 그렇게 무지한지 우리야말로 모르겠다. 그러니까피해자들의 소망을 정면으로 부인하며 그들의 증언을 애매모호하니 뭐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나 사실상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며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야 자신들도 인류애가 있다고 강조하려 한 흔적이 있지만, 실제로 그 어떤 피해자들도 이들의 소위 도움을 한번도 받은 적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모욕과 이차 가해나 당한 이유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일본 우익만 모른다는 것도 우리의 편견일지 모르니까, 일본인 아닌데 이해 안 가니까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은 언제든 의견 밝히기 바란다.
한국에 새로운 반일을 자극하는 건 바로 그들 자신이다. 자신들의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니까, 한일 관계가 좋아질 때면 과거를 늘 들춰내서 갈등을 일으킨다. 이들이야말로 일본 젊은 세대가 한국을 좋아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가 우리에게 소위 일본 위안부 문제의 대가라는 학자의 저서가 얼마나 낙제점 받을 만한 무의미한 거짓인지 조목조목 반박할 자료나 제공하고 만다. 갑자기 독립운동가 흉상을 육사에서 굳이 치우겠다고 날뛰느라 이미 떨어지고 있던 지지율을 바닥으로 수직 낙하시킨 윤석열 대통령과 아주 흡사한 행태다. 둘이 혈연 관계가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 과거를 들춰내서 한일 갈등을 조장하면, 학자의 양심이고 지성이고, 대통령의 지지율이고 레임덕이고 내다 버릴 수 있다는 위험한 과거 콤플렉스, 젊은 세대의 일탈을 막으려는 추한 몸부림 병증에 단체로 전염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들이 한일 갈등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일으키는 한일 갈등을 한국인에게 누명 씌우려 한다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하니, 그들이 세운 프레임 밖에서 사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 교육이며 저런 소설과 아니메와 망가 문화가 일본 아동들의 논리력과 학습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여긴다. 소설도 역사책도 자가당착에 자승자박도 모자라 자기망신이다. 논리의 결핍과 진실의 부재, 진리의 왜곡이 기본인데, 무얼 공부한들 공부가 되긴커녕 읽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되겠는가. 두뇌 파괴, 공감 능력 오염 같은 해만 끼칠 뿐이다. 문해력이 모자라지 않는 이상, 똑똑한 아이일수록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데, 더 파고 들어간들 교과서 같은 학교 교육도 그 모양이니 인성이 이쿠히코 수준이 된다. 이해를 포기하고 거기서 문제를 덮으면 이성이 이쿠히코 수준이 된다. 물론 미디어워치와 이쿠히코 독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큰 칭찬이 없다.
재한 일제 세력도 한국 학교에서 교육 받아봤자 저런 학자나 초빙하는 재한 일본 극우 언론이나 밥상머리 교육으로 받고 자라니까, 대입에 한국 화교와 똑같은 특혜 없이는 대학도 못 갈 판이다. 물론 모 화교 학자처럼 스스로 엘리트 전문 인력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당연히 한국 빈민 아동들도 못 받는 특혜 요구하지 말고 사교육비도 독점하지 말고 자기 능력으로 대학 가기 바란다. 자기 능력으로 대학 못 가서 특혜 요구하는 주제에 엘리트 전문 인력이라고 주장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을 못 하는데, 왜 그게 제 논리성 깎아 먹기가 아니란 말인가.
반면 우리 중 여럿처럼 초등학교밖에 졸업 못한 한국 노동자들까지 자신 없다고 처음엔 발 빼다가도, 집단 논의 속에서 반박의 핵심을 찾아낸다. 이쿠히코니 미디어워치 같은 일제와 중국 식민주의 세력 때문에 한국인은 멍청하게 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머리 식히려 유투브나 인터넷 커뮤를 하다가도, 어느새 그들이 퍼뜨린 가스라이팅 논쟁에 휘말려 있으니 말이다. 혼자서는 머리 아파하던 사람들도 정치 프레임 밖에서 생각한다는 기본 원칙을 숙지하며, 이 책 전반에 나온 예시만 정리해 줘도, 놀라울 만큼 빠른 시간 내에 기막힌 반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예전처럼 인터넷하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촌철살인의 승리를 즐긴다고 기뻐한다. 모든 직업이 그 분야만의 지성을 요구하지만, 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인 <지성의 재발견>을 통해, 그들의 가능성을 새로운 분야에서 활용하는 모습은 참으로 흐뭇하다.
일본도 한국도 아닌 미국 가봤자 전범기업들이 후원하는 와패니즈들이 버티고 있다. 하버드 램자이어 교수는 자신이 매춘부라고 모욕한 전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은 무시하면서, 자신이 받은 고통만 주장하고 있는데, 그가 받았다는 공격이란 결국 자기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학자가 반론 받으면 재반박을 하면 되지, 반론을 공격으로 모는 건 학자다운 자세도 아닌 데다, 자신은 피해자들을 이차 가해하면서까지 연구와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반대편 학자들에게는 그런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학자인데 토론을 못하고 반박을 공격으로 본다. 이 위대한 일본식 지성이 학생들에게 대체 뭘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10살 소녀도 매춘부가 되는데 동의했다면서, 그 자체로 아동성착취/아동학대/소아성애 다 성립한다는 것을 하버드 교수가 되고서도 깨닫지를 못한다. 그 세 개념이 미성년 소년에게 성관계와 보호를 요구하는 관습을 사랑이라 불렀던 사무라이 주군 수준이고, 그걸 지금까지 아름답다고 보는 게 일본 미학 수준이다. 오다 노부나가 같은 유명 남자 성인 무사와의 성행위도 모자라 목숨을 바쳐 지켜 주겠다는 동의야 그 소년들도 했다. 이들의 지능과 공감 능력이 정상으로 보인다면, 정신과 가서 검사 한번 받아보기를 권한다.
이렇듯 일본의 다음 세대는 아직도 전시 정신 교육을 받는다. 재한 일제 세력은 신분 세탁한 김에 조용히 과거와 손을 끊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 그 기회를 내버렸다. 그들을 잊고, 어떻게 사는지도 관심갖지 않는 게 진정한 용서라는, 일본 망가에나 나올 가스라이팅이 떠돈 적도 있는데, 그들은 잊히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를 뚜렷이 해서 조상들을 본토에서처럼 영웅으로 숭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침략은 내란이 되고, 평화 시위는 폭동이 되고, 학살은 폭동 진압이 되고, 수탈은 수출이, 가해국은 피해국의 은인이,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 살인자가, 위안부들은 매춘부가, 다른 피해자들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논란을 일으키며 대통령까지 관여한 게 분명한 정재계 배후의 음지 세력이 전면으로 나왔다. 그들은 논란이 클수록 기뻐서 더 키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기시다 같은 본토인이 아름다운 표현으로 인정해 주면 더욱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본토인들도 결국 일본에 대한 충성이나 피지배 민족에 대한 강경책이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모 사이트에서처럼 뒤떨어진다고 경멸한다. 한국인을 재정복하는 착각에 빠져 희열을 느끼며, 위대한 조상과 일체감을 느낀다. 그렇게 한국인을 완전히 재정복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주만을 기습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외교가 안전해지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처럼 말이다. 이 부분만은 토론하지 않겠으니, 20세기 때 그대로 전혀 변화하지 않았던 그들은 어차피 그런 믿음을 결코 바꾸지 않을 테고, 이번이야말로 그들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을 드디어 배울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과 재결합할 기회인 건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를 보면, 한국인과 한류를 통해 친구가 되고 한국에 살기도 한다. 겉으로는 전혀 우익 같지 않고 일본의 잘못도 인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한국인 친구들은 전부 똑같은 형식의 질문에 시달린다. 한국은 왜~ 한국인은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거라는 교토더쿠식 화법의 예시는 이렇다. 한국은 왜 일본 만행만 기억하고 일본이 철도도 수도도 깔아주고 학교도 세워서 한국을 근대화시켜 줬다는 건 기억 못해? 한국인은 왜 한국인을 더 많이 죽인 북한이나 중국보다 일본을 더 미워해?
다음은 아직도 온오프라인을 2차 대전 망령처럼 떠돌며 한국인을 괴롭히는 그 무수한 일본식 물음, 퓨어 앤드 이노센트 재패니즈 퀘스천에 대한 답변 예시다. 화내거나 홧병 걸리지 말고 이렇게 대답해 보라.
일본은 수탈한 쌀이며 자원을 실어가려고 철도를 깐 거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굶어 죽을 뻔했어. 수도도 자기들 마을에만 깔아서 자신들만 쓰고 한국인들은 쓰지 못하게 했어. 한국에는 서당도 선교사들의 학교도 이미 있었고, 정부도 유학생들을 대거 외국에 보냈었는데, 일본이 군도 찬 선생이 가르치는 군국주의 학교를 세워서 한국말과 한글을 버리고 일본말과 히라가나, 창씨개명을 강조했어. 근대화가 아니라 수탈 착취 제국주의 시스템이었어.
북한과 중국은 기록이 남아있어서 그렇지 일본이 더 많이 죽였어. 러일, 청일, 의병, 독립, 2차 대전, 한국 전쟁까지 혼란 틈에 사라진 기록도 많고 독립군 토벌 때 산간 오지 마을들은 그냥 사라져 버릴 정도니 한국처럼 기록 시스템이 잘 된 나라도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었는지 다 알 수도 없어. 강제징용피해자도 간신히 살아 돌아와 일본 전범기업에 징용자 명단을 요구했지만, 인종차별 모욕과 함께 거절당했다고 진술했을 정도야. 한국이 이러니 일본이 학살한 중국 희생자들, 동남아 정글이나 태평양의 작은 섬들에서도 희생이 엄청난데, 다 알 수도 없어. 기록이 남아있던 나치의 피해자들보다 결코 적을 리 없지만, 유색인종 피해자라 무시된 거지. 하켄크로이츠는 범죄인 나라들도 욱일승천기는 허용하잖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아쉬울 것 없다. 어차피 잘 대답한 우리 중 여럿이나 여러분이나 똑같은 반응이었다.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화제 전환한다. 한국인들이 과거사를 먼저 꺼내지도 않고 그저 사람 대 사람의 우정을 쌓고 싶었을 뿐인 자신들이 도리어 늘 과거를 잊자던 일본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건지 이해 못하건 말건 말이다. 물론 재한 일제 세력은 묻지 않는다. 위안부고 간토 대지진 학살이고 그런 <부끄러운 과거> 자꾸 들춰 내봐야 좋지도 않다.
우리 중 최고령자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에 답하자면, 몇 번이고 답하자면, 피해자는 부끄러운 과거가 없다. 과거를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죄를 저지른 가해자뿐이다. 유태인도 흑인도 성폭행 피해자도 한국인도 그 외 모든 피해자도, 아무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수치스러워할 이유도 없다. 가스라이팅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도, 그럴수록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대답하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물음은 우리 역시 물음을 품게 한다.
일본 정부도 그렇고 한국 정당의 대통령도 그렇고, 과거를 잊자고 미래를 지향하자더니, 왜 자꾸 들춰내는가?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가해국 클럽은 결코 과거를 잊지 않는다. 그 모든 피와 죽음과 기아와 역병의 역사가, 그들에게 승리의 영광에 빛나는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패망으로 끝났지만, 그것은 그들 책임이 아니고 같은 신민으로서 황국이나 기타 제국에 충성하지 않았던 피해국 국민들, 나눠먹을 때는 언제고 서로 더 먹겠다고 원수가 된 옛 우호 국가들 등등이다. 그러니 그들의 잘못이, 그들 조상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만 분명히 한다면, 다시 승리하리라.
결국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던 세대들도 군국주의에 매몰되고, 그렇게 개개인의 능력도 거기 갇힌다. 피해국을 가둔 프레임과는 또 다른, 더 깊고 더 넓은 덫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과거를 반성할 필요도 없고 현재의 방향을 수정할 필요 없는 아늑한 곳이다. 그들은 무기력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지만, 욱일승천기는 놓지 않는다. 욱일승천기의 그늘이어서 아늑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욱일승천기가 자신들을 다시 바위를 향해 날아가는 달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지켜주리라고 믿는다. 피해국들이 보면 이해 안 간다. 하지만 위안부를 매춘부로 모독하고 사도광산과 군함도의 강제징용자들에게서 강제 연행을 삭제한 표기가 과거를 들춰내서 고인모독과 피해자 이차 가해가 아니라, 이미 과거를 사과했다고 주장한 나라가 할 짓이라는 게 이해 안 가는 것도 똑같다. 욱일승천기 그늘에 사는 히키코모리들은 사고방식이 점점 외부에게서 괴리되는데, 그 괴리감을 평온하다고 즐긴다. 그들을 알게 될수록 아무도 그들과 대화하거나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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