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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국 혐오-한국사 날조 비하 반박 (5)

혐한 공동 대응

by 평범한 한국인들 2025. 4. 1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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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남녀노소 약자혐오니 조선은 썩어빠진 나라니 한국은 역사 내내 나쁜 나라였다는 둥, 혐한인들의 인종차별의 역사는 유구하죠. 자신들이야말로 조선은 악, 일제는 선의 구도를 만들어 일본이라면 이토 히로부미도 선하고, 조선인이라면 안중근 같은 독립투사도 악하다는 주장을 퍼뜨려 놓고, 그를 반박하는 우리가 흑백논리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데, 오늘도 기꺼이 반론합니다. 세습 의회인 일본이라 왜 피해자에게 반론할 권리가 있다는 건지 혐한인이라면 이해 안 갈만도 하지만 우리는 혐한인 아닌 한국인이니까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후쿠자와 유키치는 본래 한국인을 사람 취급도 안 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극심한 아시안 나치였는데, 그런 인물을 위인이라며 엔화까지 등장시켰던 게 일본일 정도니까요.

오늘은 과연 조선이 살기 힘든 나라였는데, 일제가 구원해 준 건지 알아 보겠습니다. 이 블로그에 와서 이의 제기하며 다양한 혐한 발언으로 반론 거리를 제공해 주신 모 일본인 네이버 유저에 감사를 보냅니다.

출처는 아마존

https://www.amazon.com/Mabiki-Infanticide-Population-Eastern-1660-1950/dp/0520272439

그분의 주장에 따르면 마비키는 한국인들이 퍼뜨린 가짜로 이미 반박됐다지만, 우리의 자료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 책은 아마존에서 지금도 버젓이 판매되는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 학술 서적입니다. 저자인 파비안 드릭슬러는 혐한인들의 주장과 달리 한국인도 아니고 말입니다.

"Mabiki is a fabulous piece of historical scholarship on an important topic that until now had been relegated to the realm of traditional Japanese folktales." -- Martin Dusinberre ― American Historical Review Published On: 2014-04-01

"This complex and immensely valuable book is certainly essential reading." -- Luke S. Roberts ―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Published On: 2014-04-07

“Innovative, interesting, and rewarding . . . [an] extremely stimulating book.” -- Osamu Saito ―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Published On: 2014-12-01

"Mabiki skillfully blends statistical and textual analysis. . . . Drixler’s methodology is rich and complex. . . . The book is packed with interesting insights that will appeal to a wide range of readers." -- Robert Eskildsen ― Public Affairs Published On: 2015-12-01

"Mabiki is a model of methodological sophistication, imaginative and thorough use of primary sources, and incisive writing... an immensely important work and a must-read." ― Monumenta Nipponica

"Fabian Drixler has written a book that is at once structured around sophisticated analytics, packed with thoughtful interpretations, and polished off with questions that extend beyond the confines of Japanese history to challenge long-held assessments about worldwide demographic trends." ― The Journal of Japanese Studies Published On: 2014-08-20

아메리칸 역사 리뷰, 학제간 역사 저널, 아시아 연구 하버드 저널, 퍼블릭 어페어지, 모뉴멘타 니포니카지, 일본학 저널 등 여러 전문지에서 극찬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잔혹해서 자기 아기까지 죽인 게 아니라 일본의 세금제도가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전국 시대는 아무도 침략 안 했는데 자기들끼리 싸운 역사상 최장 기간인 백년의 내란이니까 당시 일본인들 생활상은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전쟁한다고 세금이 60프로에서 80프로까지도 가는데, 그마저 패해서 점령당하면 약탈이며 각종 전쟁 범죄가 엄청납니다. 같은 일본인이고 뭐고 없어요. 굶어 죽고 맞아 죽고 겨우 전쟁 끝나 우키시마 호 타고 오다가 폭사당한 한국 강제징용피해자들 대우를 두고 사도 광산과 군함도 기념관에서 일본인들이 <일을 시켜야 하니까 잘해줬습니다>라는 증언을 하잖아요? 같은 일본인이라도 지면 일본인들 눈엔 전혀 문제 없는 대우를 받는 겁니다.

전혀 추천하지 않을 정도로, 전국 시대를 엄청나게 미화한 작품인 대망이라는 일본 최고 인기 역사소설을 보면, 아이가 태어났는데 몇년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옷을 해입혔다고 떡을 해서 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비키라는 풍습이 없었다고 미화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실제로 그랬다면 정말로 가난했단 뜻이죠.

그런데 에도시대가 됐는데도, 살기 힘듭니다. 세금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에도 시대 이전 히데요시가 내전을 끝냈을 때도, 세금이 겨우 10프로 줄어서 최고 70프로였습니다. 이러다가 임진왜란 일으키니 다시 전쟁이었죠.

임진왜란 때 가또 기요마사가 조선의 점령지에서 일본보다 세금을 낮춰서 회유하려다가 너무 높아서 분노한 조선인들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럼 대체 세금 차이가 얼마였기에 그러냐. 물론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략 세금 차이가 조선은 10프로, 일본은 70프로입니다. 7배 차이가 나요. 물론 조선도 실질적으로 더 많이 뗐다고도 하지만, 침략전 하러오는 일본이 실질적으로 더 많이 뗐죠. 25프로 대 80프로로 봐도 여전히 엄청난 차이입니다. 물론 일본 세금이 실제로는 적은데 한국인들이 우기는 거라고 또 인정 안 할 거면, 일본인들이 잔혹해서 아기 죽인 걸로 하든가 하세요. 혐일은 그쪽이네요.

다시 말해 조선인들이 국뽕 때문에 조선에 충성한 게 아니라 훨씬 세금을 덜 떼면서도 내전이고 침략전이고 일본처럼 전쟁에 오래 시달리지 않고 평화로운 가운데 일본을 포함 외국에는 일절 없던 구휼도 했기 때문입니다. 노비가 많았다는데 조선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거나 가난해지면 그냥 노비 되면 됩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908024_002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37권, 세종 9년 8월 24일 기묘 2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집현전 응교 권채를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다

sillok.history.go.kr

 

외국과 달리 노비라도 왕의 보호를 받았고, 출산 휴가까지 주어지는 등 동시대 외국 자유민도 못 받은 인권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자손손 노비되긴 커녕, 노비들끼리 마을 이룬 외노비 마을은 돈과 부역만 바치면 간섭 없이 살 뿐 아니라 개인 능력으로 부자 되면 도망쳐서 양반 족보 사는 신분 세탁과 계층 상승 가능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노비가 되긴커녕 양반의 자식으로 면천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 서자가 받았다는 차별도 후처 중에 면천된 노비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평소 혐한 심한 한겨레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655110.html

 

평민의 양반 되기 ‘성씨·족보를 내 품에’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권내현 지음 역사비평사·1만2800원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박홍갑 지음 산처럼·2만5000원 조선 500년은 벼슬에 오른 특권 양반층이 기득권을 나눠주지 않으

www.hani.co.kr

 

 

숙종 때인 1678~1717년 당시 정부는 노비 면천 문서나 통정대부 등에 임명하는 공명첩을 팔아 기근 진휼 재정을 확보했다. 수봉은 재산을 내고 합법적으로 평민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성장’은 그만이 아니었다. 도산면 남성 호주(주호) 중 노비가 1678년 40%가 넘었으나 100년 뒤인 1780년엔 10% 아래로 급감했다. 1678년 호주 가운데 성·본관을 다 가진 이가 59%였으나 1717년엔 74%로 는다. 성 없이 본관만 있던 이들은 30%에서 11%로 줄었다. 본관만 있던 노비들이 성과 본관을 갖춘 평민으로 성장한 것이다.

https://www.koreadaily.com/article/3989049

 

[세상만사]족보의 사회학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의 뿌리를 찾아 그 정체성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가족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동양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www.koreadaily.com

 

일본인들은 일제가 조선의 노비를 해방시킨 것처럼 거짓말하는데, 실제로는 철종 때 이미 노비 2프로였다고, 하버드 교수가 증명합니다.

이는 조선이 반상의 법도를 아무리 지키려 해도, 외국처럼 귀족과 평민의 신분제가 엄격한 게 아니라 양반도 과거제 합격을 못하면 상류층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조선이 썩었다고 욕하는 이들이 드는 근거들은 조선이 외국처럼 상류층이 세습 귀족화되었을 때 드러납니다.

반면 노비도 양반되는 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했죠. 출세 이전에 자유민도 노예 신세니까요. 일본뿐 아니라 사실 조선 외 모든 나라서 평민이 상류층 되기 불가능했어요. 저 책에서는 머나먼 여정이라는데, 동시대 외국서는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도 기사들이 농민을 죽이는 게 말로만이라도 나쁘다고 하는 판에, 사무라이가 비무장 민간인을 기분 나쁘다고 단칼에 죽여버리는 게 무사도고, 여자는 성노예 수출이나 당했던 나라에 자유민이 어디 있어요? 그걸 노예로 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일본 특유의 끔찍한 인권 유린 의식을 보여 줍니다.

임진왜란 끝나고 도공 끌고와서 도자기 수출로 이익을 봤는데도, 세금은 안 내려갑니다. 여기서 도공 문제를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조선이 도공을 홀대했지만 자신들이 잘 대해줘서, 그 중 우두머리에겐 영주가 이름도 내리고, 한 도공은 조선에 돌아와 가족까지 데려갈 정도였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일본식 근거가 드러납니다. 늘 한두 명이에요. 박유하도 자기가 화류계 출신이었다고 말하는 할머니 한 사람과 대화했다고, 강제 연행까지 된 위안부 전체를 제국의 매춘부로 싸잡아 매도했죠. 조선인 위안부 모집책 한 명의 기록을 근거로 댔는데, 당시 일본 다문화도 무조건 조선인으로 호적에 올랐으니 그렇게 일제에 충성하던 조선인이면 일본 다문화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문제는 그 한 명 가지고 많은 일본인 여교사들이 김활란처럼 제자들을 위안부 모집했다는 사실이며 일본군도 직접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조선인이 다 모집한 것처럼 왜곡한다는 겁니다.

도공 문제도 마찬가지죠, 도공을 하도 많이 끌고가서 도자기도 못 만들던 나라에서 수출까지 할 지경인데, 그중 한 명만 이름을 받았고 나머지는 어떻게 됐다는 건지 흔적도 없고 기록도 없어요. 가족 데려갔다는 도공 역시 당연한 일이죠. 당시 조선은 전쟁으로 초토화됐으니 먹고 살기 힘든데, 일본에서는 그나마 도공 중 1명은 이름도 받는 식으로 1프로, 혹은 0. 1프로는 대우해주니, 피폐해진 고국보다 먹고 살기는 나았던 거죠. 그 0.1프로의 도공에게만요. 정말 도공들을 잘 대해줬다면, 모두의 기록이 남아있고, 그들 모두 가족들을 데려가 그들 모두 0.1프로 도공처럼 자손을 뒀을 텐데 나머지 99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정상입니까? 끔찍한 비극이죠.

https://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836

 

[아직도 풀리지 않는 恨] 아리타 도자기 마을 - 경남일보

아리타 마을의 전경. 한국의 여느 농촌도시처럼 평온하다. 7월 중순 무더위로 전국이 서서히 뜨거워질 무렵, 본보 취재진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www.gnnews.co.kr

 

주민들은 한결같이 비석을 ‘고라이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을 대대로 비석이 조선인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400여년 전에 아리타로 끌려온 조선인 도공은 수백여 명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땅에서 매순간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며 혼을 담아 도자기를 빚어냈을 것이다. 방치된 채로 남아 있는 쓸쓸한 비석에서 그들의 생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신문 외 여러 혐한 언론 기사들은 조선 도공 허위 가지고 조선이 박대한 도공들이 일본에서 꽃피워 근대화 자금이 됐다는데, 기록에 이름 남은 몇 명 제외하면 실상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도자기 수출이 일본 근대화 자금이 됐다면 가라유키 상 수출은 대체 왜한 겁니까? 도자기 수출로 근대화했다면서 왜 애국 낭자란 이름까지 붙이며 후쿠자와 유키치까지 적극 동참할 정도로 국가가 앞장서서 성노예 수출을 했다는 건지 앞뒤가 안 맞습니다. 혐한 언론이 감춰봤자 우리가 계속 공론화할 겁니다.

역시 가라유키 상이라는 일본사의 치욕을 감추고 군 현대화까지 하고 유학생들 내보내고 외국인들 초청하며 노력한 조선의 근대화를 청일 전쟁, 러일 전쟁 둘 다 한반도서 일으키며 방해한 일본의 죄악을 피해국 잘못으로 숨기려는 가스라이팅입니다.

이 도공 허위 가지고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 포로들을 노예 시장에 값싸게 팔아넘겨 축재했다는 사실 또한 은폐합니다. 조선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포로들이 돌아가도 괴롭혔네 뭐네 하는데, 그 역시 전쟁으로 황폐화된 나라 어디서나 일어났던 참상이고, 그 때문에 침략자들이 자신들의 원죄를 안 그래도 힘든 피해자들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의 증명일 뿐입니다. 진짜 인도주의자라면, 가해자의 죄악을 왜 피해자들에게 누명 씌우겠습니까?

한국인의 일이라면 일부 정도가 아니라 1명의 일도 0.1프로의 일도 민족 전체로 싸잡으면서, 일본이 민간인들도 제암리 학살이며 명성황후 시해 같은 만행에 나섰던 일은 조선을 구원했다고 표현하는 거야말로 흑백논리죠. 잔류 일본인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당했다는 나무위키의 거짓말을 이미 증명했지만, 재한 일본인 중국인이 과거사 문제로 분란 일으키지 않는다는 소리 역시 거짓말이죠. 잔류 일제 세력이 인터넷에 뿌리는 혐한 자료가 어마어마하고 책도 많이 내며 존재감을 과시해 온 게 광복 이후 내내 그랬습니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란, 일본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만행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는 일본인 특유의 위선을 보여주는 혐한 책도 한국인과 결혼한 재한 일본 다문화가 지난 세기에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1999년은 우리가 자주 증명했듯 일본이 아시아 외환위기를 빌미로 어업협정을 파기하고 독도 어부들을 납치해서 감금하고 폭행하며 벌금 물렸던 범죄를 저질렀던 시기입니다. 이 저자나 댓글로 일본의 흑백 논리를 우리에게 누명 씌우던 일본인이나 특유의 내적 모순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8978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 알라딘

부제까지 합친 제목은 . 이 고약한 제목의 책은 한국에서 26년 동안 살아온, `한국인을 가장 많이 아는 일본인`이 쓴 한국 비판서다. `경제는 1만달러, 의식은 1백달러` `입으로만 찾는 의리``망나

www.aladin.co.kr

 

자신들은 아무 증거 없는 책까지 써서 그 어떤 악랄한 혐한을 해도 한국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훈계고, 한국인들이 혐한에 맞서 근거를 대며 반론하면, 일본인을 악으로 모는 흑백논리라고 욕하는 일본 다문화.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죄악을 뒤집어 씌워 가해자로 만드는 PC주의 위선의 산 증인들이죠.

다시 한국인들더러 한국사 부끄러워하라는 일본인들이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본사로 돌아가자면 이렇듯 임진왜란의 전리품과 도자기 수출, 일본인 및 조선인 노예 수출, 히데요시가 널리 장려한 유곽 성매매 산업으로 일본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왜 영아 살해를 했을까요?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가 영주들을 상경시켜서 장군에 인사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웃긴 게, 이 상경 때문에 지역 이동이 원활해져서 일본 경제가 발전했다는 겁니다. 조선은 예전부터 지역 이동이 원활했는데, 일본은 자유민이라며 다들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이 영지에 꽁꽁 묶여 있으니, 진짜 자유도 아니고 영주 일행만 이동할 수 있게 된 게 일본으로선 너무 신세계여서 외국 눈으로 보면 그걸로 경제 발전했다는 기가 막힌 호들갑을 떨어대는 거죠.

그렇지만 지역 이동 가지고 경제가 발전한 역사는 없습니다. 이는 일본이 조선 도공 납치와 조선 노예, 일본 자국민 성노예 수출로 경제가 발전했다는 치욕을 숨기기 위한 거죠. 실제로 더쿠서는 외국서도 중시하는 도자기 전쟁 이야기 나오면 대놓고 지겹다고 하더군요. 도자기 전쟁 이야기 나오면 비극을 두고 지겹다고 말하는 인성에, 중국인 부동산 점유율 나오면, 중국인은 한국 부동산 사지 말란 말이냐며, 한국인들 중국 부동산 못 사는 건 무시하는 언피씨 혐한인들 사이트답죠.

그런데 역사상 어느 나라고, 노예 수출과 전리품보다 지역 이동이 더 큰 경제 발전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진리를 일본인들이 적극 믿으니, 자국 경제가 갈수록 꼬이는 것도 당연한 결과죠. 자국 경제가 왜 발전했는지 본인들 스스로 은폐하고 왜곡하다 보니 갈수록 모르게 되니까요.

게다가 이 영주들이 서로 경쟁한다고 화려한 상경을 위해 평화시에도 세금을 80프로까지 뜯어갑니다. 내전 때건 내전이 끝나건 통일을 하건 전쟁을 하건 전쟁이 끝나건 노예 무역을 하건, 일본 국민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 영아 살해를 했던 겁니다.

에도 막부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 때는 이미 지난 화서 증거를 댄 가라유키상 50만명 수출을 통해 근대화를 완료합니다. 증거를 매번 대는 데도 포스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와서 허위 주장을 하니 앞으로 일본의 만행을 많이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의회 민주주의를 했다지만 이토 히로부미식 민주주의다 보니 세습 의회라서, 미군정이 개혁을 한번 했는데도 지금도 북한보다 세습 가문이 많은 일본입니다. 일본의 민주주의 개념도 자유민 개념과 똑같이 노예화된 인식의 결과입니다. 자국민도 노예로 다룬 일본이 조선인 노예를 구했을 리도 없고, 민주주의 법치국가도 아직까지 못 된 일본이 조선에 민주주의 법치제도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부정해봤자, 일본인이 아기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거나, 민주주의 법치제도가 싫어서 아직까지 세습한다는, 일본에 더 부끄러운 소리만 됩니다. 한국사 날조하다 일본사의 수치만 드러내는 짓을 하니까 일본 다문화가 한일 관계에 해악만 끼치는 겁니다.

그리고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의병 전쟁을 전부 조선에서 치르니 조선만 엄청난 피해를 보고 일본 본토는 무사했습니다. 이 전쟁들이 끝난 뒤니까 조선의 출생율이 증가했다는 것도 이미 설명했습니다. 자기들이 전쟁 세 번이나 조선에서 해놓고, 끝난 뒤 출생율 증가한 걸 자기들 덕분이라고 하는 게 일본식 정의입니다.

일본의 논리대로라면, 유럽에서 나치와 소련이 점령한 나라들, 프랑스 포함해 거의 유럽 전역이 다 본토 내에서 전투가 없던 동안 이전보다 출생율과 생산율이 올랐으니, 유럽도 나치와 소련이 구한 거겠네요. 이게 나치 동맹국에 빛나는 아시안 나치들의 일본식 역사입니다. 마비키와 가라유키상이라는 자국사의 치욕을 감추려다 한국사도 날조하고 세계사도 모독하는 결과를 낳는 거죠. 일본이 자유국가인 척하면서 소련의 유럽 지배를 지지하다니, 공산주의는 자기들이 하면서 한국에 뒤집어 씌워서 샌프란시스코 조약 승전국 자리에서 내쫓은 것만 봐도 피해국 가해국 만들기죠.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고 광산이니 쌀이니 엄청나게 수탈했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했습니다.

광복 후에도 위폐 찍어내서 금 249,633kg과 은 67,514kg가, 한일 수교 때 일본 정부가 당시 한국에서 수탈해 갔다고 스스로 인정한 금액인데, 자금으로는 352억 엔이 유출되었고, 물자로는 148억 엔이라고 합니다. 문화재 반환 때도 목록을 조작하고 일본 기업들은 지금도 자사 제품 품질을 조작해대니, 이보다 더 큰 액수일 가능성이 크고, 하지의 동조 아래 금융 기관들이 일본 기업에 대출했다가 회수하지 못한 금액만도 26억여원입니다. 현재 시세로는 얼만지 알아보기도 끔찍한 액수. 가해국이 피해국에서 귀환 자금 대출 받는 게 말이 되나요? 하지가 얼마나 썩어빠진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심지어 이런 부분 이미 예전 포스팅에서 다 설명한 내용인데, 오늘 일본인이 하도 아니라고 우겨서 다시 설명합니다. 일본의 경제차관 액수만 인정하고, 일본이 수탈해 간 금액은 인정 안 하면서 일본이 훔쳐 간 것 중 일부만 되돌려 준 걸 <도운 거니 고마워하라>는 자가 어떻게 같은 <우리> 한국인입니까? 피해국을 가해국으로 만든 소위 사회적 약자들의 가스라이팅 수준은 나날이 끔찍해져 갑니다.

광복 후에도 저 정도로 수탈해 갔으니, 일본이 원자탄 한 번 맞고도 조선 포기 못한다고 포기하면 굶어 죽는다는 절실한 심경으로 미군에게 무조건 항복 안 한 겁니다. 조선은 계속 차지하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한번 맞을 거 두번 맞고 항복한 거죠.

사실 광복 이전 30년간 수탈한 건 금액 환산도 안 됩니다. 희생자들 목숨도 그렇고요. 이걸 갖다가 일본이 조선에 남긴 부동산 액수만 따지고 든 미국의 계산법은 미국 역사학자들도 욕합니다. 미국은 그나마 제국주의를 안 한 열강인데, 공산주의 들이대며 로비 해댄 일본 편 들다가 하지도 그렇고 너무 제국주의 같은 짓을 많이 해버렸으니까요. 결국 일본이 한국을 공산주의로 몰아간 게 먹혔던 일은, 이후 미국에 매카시즘 광풍으로 나타났죠. 일본 731부대를 연구 기록 받고 풀어줬다가, 나중에 그 부대원들이 세운 녹십자 때문에 2천명이 에이즈 걸렸듯 말이죠.

https://www.asiae.co.kr/article/2024012722302860892

 

[알고보면]에이즈 감염 2000명 유발한 일본 녹십자와 731부대 그림자(下) - 아시아경제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시리즈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처형당하는 게 당연…인정하기까지 몇 년 걸렸다"(中)>에 이어...

www.asiae.co.kr

*요시무라는 731부대에서 저지른 악행에 대해 "전쟁 중이었잖아요. 모르면 공부나 하세요"라며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곤 했다. 전쟁에 참여한 대다수 일본인의 공통된 인식이다.

-모르면 공부나 하라니 다문화 혐한인 PC주의자들이 자신과 생각 다른 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네요. 역시 일본이 원조였습니다.

혈액을 가열처리해야 바이러스가 비활성화되는데, 일본 녹십자가 혈우병 환자들에게 비가열 혈액제제를 사용해 HIV 감염자가 발생했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이 비가열 혈액제제를 수혈받아 에이즈에 걸린 혈우병 환자는 약 2000명이다.

계속 논의를 이어나가면, 일본은 식민지에서 수탈해서 부유해졌는데도, 마비키는 안 끝납니다. 일본의 빈부격차는 극심해지고 하층민은 점점 가난해지니까요. 조선에 와서 민간인이라며 제암리 학살이나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며 갖은 범죄로 부자된 하층민들도 많지만, 어떤 이들은 이들이 조선에서 조선인들을 착취해 값싸게 생산한 쌀을 일본에 보내는 바람에, 경쟁에서 밀려나 몰락했습니다. 조선인들 착취해서 생산한 쌀이니, 일본 소농이 생산한 쌀과 가격 경쟁에서 비교가 안 되니까요. 과거 포스팅에서 다 설명한 일인데 일본인 한분이 하도 이해 못하셔서 또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증거를 대야 할까요?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61205/81664223/1

 

“일제때 조선인 키 3cm이상 줄어”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키가 점차 작아졌다는 연구가 나왔다.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3일 한일민족문제학회가 연 학술대회 ‘사할린 한인기록물을 통해 본 일제하 재외한인사회…

www.donga.com

조 교수는 ‘사할린 화태청(樺太廳·1907∼1945년 남사할린을 관할한 일제의 관청) 소장 경찰 기록과 일제하 조선인 신장(身長) 추세’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1896∼1900년생 남성은 평균 키가 162.8cm였지만 1921∼1924년생은 평균 159.5cm로 3cm 이상 작아졌다고 밝혔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일제가 구원해줬다고 말하는데, 뭘 대체 어떻게 구원하면 일제 자료서부터 키가 평균 3센치씩이나 작아집니까? 그들이야말로 북한 욕할 게 아니네요, 똑같이 사람 탄압하면서. 본인 키가 30센치 작아질 천벌 받을 소리는 작작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일본인의 딜레마는 이거죠. 일제가 조선을 구원했다면, 그 이전에 자국에서부터 가라유키상이나 마비키 풍습이 없어야 합니다. 성노예 수출이고 영아 살해고 일본 국민이 사실상 노예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니까요. 자국민도 노예 취급하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인은 노예 취급 안 했을 리 있나요. 그런데도 끝내 일제의 만행을 부정하겠다면, 결국 일본인들이 노예 취급을 받지 않았는데도 여성들을 매춘부로 수출하는 걸 당연시 하거나, 혹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매춘부가 됐거나, 자기 아이를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혐일은 본인들이 하고 있네요. 우리도 일본이 싫지만, 일본인들이 그 당시 하고 싶어서 아기를 죽였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한국사 날조 혐한을 하다보니 일본사 날조는 물론 조상 욕까지 하게 되는 거죠. 천벌도 필요없는 사필귀정입니다. 물론 자국이라는 청나라서 1억 오천명 제노사이드 당하며 자자손손 노예로 살던 중국인보다는 나을지 모릅니다. 만주족의 한족 대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동북공정 중국인들이 주장하나 본데, 인종청소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역시 천벌 받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어떻게 조선은 동시대 나라들보다 500년이나 갔는지, 그 비결을 계속 풀어 보겠습니다. 당시 가장 빈부격차 적고 살만한 나라였으니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킨 거예요. 조선인들이 바보가 아니라 계속 같은 나라에서 단일민족 단일문화로 살면서, 왕조가 나쁘면 끌어내리고 말지, 외국처럼 여기서 반란 일면 외국군을 들여 진압하는 식이고 외국 왕에게 복종하며 외국을 위한 군대에 끌려나가는 유럽사 같은 일이 없었던 겁니다. 조선이 유럽처럼 외국군대로 자국 반란 진압한 건 동학농민운동이 처음인데, 그런 일이 유럽에서는 그냥 일상이었습니다. 중국은 외국군에 툭하면 패하고, 일본은 외국군 없이도 자기들끼리 100년씩 싸우니까 논외고요.

일본인들이 자가당착 내적 모순에 걸리면 꼭 등장시키는 프랑스 외교관이며 외국인 혐한 자료들을 반론하고자,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 실제 참상과 조선을 비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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