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가장 많이 받는 가스라이팅 중 하나가, 매국노 청산을 못했으니 반성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제국주의 열강의 피해국들 중 한국은 가장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나라며, 그 때문에 경제차관이나 받은 한국과 달리 많은 배상금을 받은 동남아나 중국보다 훨씬 발전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프랑스는 매국노 청산을 했는데 왜 한국은 못했냐는 지적은, 혐한 세력의 흔한 근거지만, 역사를 무시한 단순 비교다.
프랑스도 제국주의 열강으로 가해국 중 하나였고, 한국보다 훨씬 짧은 세월 점령되며 프랑스 비시 정부가 나치 편에 서서 연합군과 싸워서, 프랑스 식민지 중 전략적 요충지던 항구를 점령하려던 영국군을 몰아내는 등, 나치 편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반대로 레지스탕스는 연합군 조종사를 구출한 거 외엔 전적이 한국 광복군보다 훨씬 적다. 자국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에 보내며 온갖 협력을 한 프랑스 나치 괴뢰 정부보다, 미군과 영국군과 함께 싸우며 봉오동 전투 등 화려한 전적으로 일본을 괴롭힌 한국 독립군이 더 큰 도움이 됐다. 한국 독립군은 일본에 징병당해도 탈영해서 일본에 맞서 싸우곤 했는데, 그런 일이 비시 정부 장교들에겐 없었다. 이는 영국군과 같이 싸웠던 아랍인이나 유태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소리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매국노 척결에 성공했고 한국은 실패했다는 소리가 나돈다. 정말 사실일까. 실제로 그건 독일군 장군이 파리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고, 미군이 나치 패망과 거의 동시에 파리에 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갑자기 레지스탕스 수가 늘어났다고 할 정도로, 시민들이 미군을 환영하는 동시에 나치 부역자들, 주로 나치 장교의 애인이던 여성들을 조리돌림했다. 그렇지만 실제 나치에 협력했던 고위급 프랑스 나치는 80대에야 잡히기도 했다. 진짜 고위급 매국노들은 도망치거나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식민지던 알제리는 매국노를 쫓아냈다고 할 수 있는 나라지만, 지금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아직도 화폐로 프랑을 쓴다. 진짜 프랑스 프랑도 아니고 세파 프랑이라는 프랑스 식민지 화폐다. 이러니 물가는 잡는다지만, 결코 프랑스의 그늘을 벗어나 성장하지 못한다. 애초에 프랑스가 식민지들을 여전히 묶어 두려고 만든 화폐기 때문이다.
2019년, 세파 프랑을 에코라는 새 통화로 바꾸며 식민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프랑스가 세파 프랑 보증을 서주기 싫다고 다른 나라들, 영국 식민지들에게 떠넘기는 꼴이어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이렇듯 제국주의 식민주의는 말이 잔재지 여전히 활발하다. 러시아나 중국은 공산주의를 내다버린 후에도, 제국주의 식민주의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티벳을 점령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아닌 가해자의 죄를 우리가 대신 부끄러워하라고 가스라이팅 당하지 말고, 실제로 현실 역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 봐야 한다.
피해국들이 독립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장 성공한 피해국인 한국의 독립조차 어떻게 아프리카 화폐처럼 훼손됐는지 알아보겠다.
피해국이 독립하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아일랜드 독립을 다룬 모 영화처럼, 피해국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여부를 묻는 물음에 집중하면 된다. 그럼 가해국이 싸울 만한 가치가 있건 없건, 피해국 사람들이 가해국의 전쟁에 끌려나가는 현실을 묻을 수 있다. 그게 바로 영국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기는커녕 아예 기정사실로 삼는 컨텐츠가 아서왕부터 제임스 본드까지 수두룩한 이유다.
그렇다면 영국의 가해로 인한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다룬 영화는 있던가? 아일랜드 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힘들게 살다가 아이리쉬 갱을 만들었는데 그 갱에 대한 작품들은 있다. IRA가 일으킨 사건들에 대한 작품들도 있다. 그런데 아일랜드 피해자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은 없다. 있다 해도 전혀 유명하지도 않고 인기는 더더욱 없다. 아일랜드 인들이고 스코틀랜드 인들이고 영국에 맞서 싸우는 작품들은 좀 있지만, 전부 민족주의라는 낙인이 찍혔다. 민족주의는 무조건 나쁘다고 흑백논리 낙인 찍는 자들이야말로 민족주의가 제일 맞서 싸운 제국주의자들 아닌가.
흑인 피해자나 유태인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있다. 둘 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승리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을 위한 구세군이 되어 사실 연합군도 제국주의 열강이었다는 사실을 파묻기 딱 좋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피해자들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때만 200만명이 아사한 베트남인, 그 외 유색인종 피해자들은 어떤가. 아직도 소녀상 하나 서구에 세우지 못하고 툭하면 철거된다. 실화를 순화시킨 작품만 해도 바로 민족주의 국수주의 국가주의 흑백논리 낙인이 찍히고, 피해자들도 나빴다는, 이 무슨, 성폭행 피해자도 옷차림을 반성해야 한다는 식의 가해자중심주의를 반영해야 인정 받는다.
이게 바로, 피해국에 잔존 제국주의 세력이 뿌리내린 이유다. 자원의 저주라며, 자원 부국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기도 하다.
가해국 클럽 일원이자 제국의 브로커들 중 하나로, 731 인체 실험 부대 민간인 관계자로 의심 받던 자의 딸이 쓴 요코 이야기, 전형적인 가해국 클럽 문화가 미국에 끼친 영향을 보자. 나치에게 수감됐던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조차 감옥 수기 출간을 중단할 정도로 독일 문화가 2차 대전을 다루기꺼릴 때, 한국 같은 피해국도 식민지 시대를 돌아보기 힘들어할 때, 일본 혼자 다이쇼 로망에서 제로센 향수까지 소위 영광스러운 과거를 들춰내고 미화해 오며 다른 가해국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가해국 클럽 작품이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전사하는 상류층의 모습을 젊은 예수처럼 우상화하고 가해자에게도 인간미가 있고 착할 수 있다는 당연한 소리를 절대 진리처럼 떠받들며, 즉 <우리가 잘못하긴 했지만 우리도 피해자였다>는 식으로 나갈 때, 일본은 아예 <우리만 피해자다>는 충격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니, 바로 일본이 가해국 클럽의 모럴 리더이자 패션 리더가 됐던 이유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지금도 한국은 역사부터 유전자까지 최악으로 열등하며, 중국은 대국이고 한국은 소국이니 중국에 복종해야 한다든가,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히 온오프라인에서 해댈 정도로, 가해국은 높은 지지율로 장기집권하건 말건 정부의 잘못으로 가해국 전체를 비판하면 안 되지만, 피해국은 개인의 일탈도 싸잡아 나라 전체와 민족 전체를 마녀사냥하는 혐한과 피해국 인종차별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혐오의 가해자가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반중 감정과 반일 감정과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 때문에 피해 보는 사회적 약자라고 자처하며, 한국인들보다 훨씬 적은 세제 혜택과 더 많은 복지 지원, 대입이고 취업이고 결혼이고 육아고 한국 빈민도 못 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부유한 가해국 국민이 피해국 내에서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이니 이주민이니 다문화로 둔갑해서, 소득제한까지 철폐하며 각종 특권을 식민지 시절보다 더 많이 누리고 있는 현상은, 여러 피해국마다 지역별 차이를 드러내며 나타나고 있다. 피해국이 발전할수록 더 심화한다. 한국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악한 피해국의 잘못이니 가해국 탓을 할 게 아니라는 부유한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주장이 글로벌 진보적 가치이자 정치적 공정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금융 제국이 어딜 가나 외국인이주민다문화라는, 결국 제국주의 열강 시대와 똑같은 존재면서도 피해국 국민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인 사회적 약자로 행세하며 침략민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서다. 가해국 이주민 중에 물론 도움이 절실한 빈민도 있지만, 한국 같은 피해국에서 소득 제한 철폐 무제한 지원은 결국 잔존 제국주의 세력과의 결탁을 드러낸다. 가난한 이주민의 모습만 비추면서 금융 제국이나 중국 부자들처럼 지역 경제를 망가뜨리는 침략 자본가들 역시 이주민이라는 사실은 감추어, 부자를 가난한 외국인의 메마른 등 뒤에 감추는 각종 컨텐츠들, 영원한 악은 없으니까 침략민도 착할 수 있지만, 영원한 선은 없으니까 피해국 독립운동가도 나쁠 수 있다는 가해국 클럽 문화가 진짜 사회적 약자들 속에 가해자들을 끼워 넣어 전체 복지 사회에 불평등과 차별과 편견을 심화한다. 이주민들과 현지인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모든 나라가 제국처럼 다문화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국과 똑같은 차별을 들이대기에, 모든 다문화 국가가 4단 하나도 평화롭지 못한 것이다.
그런 패러다임은 가해국 클럽의 책임을 없애며 피해국들에만 해를 끼친 게 아니다. 가해국 내에서도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피해자 위치를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요코 이야기와 똑같이 집단 성폭행을 다룬 뉴 베드포드 사건에서 가해자들 편을 든 사람들, 맨슨 같은 사형수들을 숭배하고 가해자가 아니라 사회의 순교자인 양 떠받드는 사람들, 소년범의 비극은 마땅히 사회의 관심을 받아야 하지만, 그냥 평범한 소년의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굳이 고문이고 살인이고 아무 반성도 하지 않지만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소시오패스들을 위해 유족의 고통이나 피해자의 인권은 배제하는 사법계와 문화계, 월스트리트 금융 스캔들의 주범들과 학교 총기난사범의 몇몇 부모처럼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고통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받는 공분이 주는 고통에 더 주력하는 사람들, 자신은 10살 소녀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어떤 망언을 해도 교수라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런 자신의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없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에 접한 자신의 고통만이 중시하다는 초국가적 일제 권익 추구 교수들, 그런 이들이 그런 가해자중심주의에 영향받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밖으로 퍼뜨린 악이 안에서도 번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건 영원한 악은 없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겠다. 그런 범죄에 맞서 싸우는 것도 영원한 선이 아닐 테니, 맞설 필요도 없고 말이다.
물론 가해자들도 관심받아야 하며 그들도 구제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충분한 관심을 받긴 했는가? 피해자들 구제는 끝났는가? 가해자 인권만큼 피해자 인권이 중시되었는가? 피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두 번째 기회를 피해자도 받기는 했나? 유태인피해자들은 한국인들 같은 아시안 피해자들보다 더 알려져 있고, 더 존중받는다. 하켄 크로이츠는 안 된다는 인간들이 같은 동맹국 깃발인 욱일승천기는 열심히 펄럭이는 이중성만 봐도 그렇다. 최소한 그들의 피해는 헐리웃 영화나 여러 소설로 널리 알려졌지, 한국 위안부의 피해가 알려지기도 전에 요코 이야기 같은 모독을 당하지 않았다. 독일은 사과하고 배상에 열심이었으며, 피해자 모독이나 유태인 혐오 서적 장르를 온 국민이 푹 빠져 보는 베스트셀러로 삼지도 않았고, 우익 정권이 공산국가 뺨치게 장기집권하지도 않았다. 유태인은 백인 피해자라 그럴지 몰라도 가장 존중 받는 피해자들 집단인데, 그러나 그런 그들 역시 홀로코스트가 조작이었다는 둥, 인종차별이 아니었다는 둥, 아직도 비난당한다. 다른 피해자들은 어떨 것 같은가. 피해자 모독과 가해자중심주의는 흑사병이다. 그 사상의 감염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 용서와 화해 기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자신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언제라도 악의 유혹에 굴할 수 있으니,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는 편이 낫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해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피해자들이 소외되며, 피해자가 되느니 가해자 집단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피해자를 위한 관심과 안전과 구제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가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가해국 클럽 문화도 피해자는 지루하고 가해자는 재미있다는 식이다. 현실에서 역사적 피해자들을 모독하고 존중하지 않는 이들의 문화가 세상의 비극이나 피해자를 표현하는 방식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들 대신 전범들과 달리 그 어떤 해도 일본에 끼치지 않고 근대화 자금을 벌어다 준 가라유키 상들을 숭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피해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자신들의 진짜 피해자들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행복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원폭 혹은 항복을 겪었다는 이야기의 극적 재미에 푹 빠져, 그전에 이미 불행했던 하층민들의 실상을 감춘 나라는 일본만이 아닐 것이다. 몰락도 신들의 황혼이어야 가치 있다는 식으로, 상류층의 위선을 꼬집는다지만 가해국 클럽 일원 역시 스스로 만든 체제의 희생자일 뿐이라는 교묘한 가스라이팅에 당하니, 다음 몰락에도 다음 클럽 일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이며, 그것이야말로 가해국 클럽이 몰락에 이은 몰락을 계속 일으킬 수 있는 이유다. 가해국 클럽 문화에서 벗어나 생각하면, 본래 하층민이던 동독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당에 충성하고 소련에 충성하다 배신당하고 버림받는 이야기도, 그 어떤 상류층의 화려함 없이도 충분히 장엄하고 극적이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에 그런 논리를 퍼뜨리는 재한 일제 세력은, 정작 한국은 <역사 내내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면 악으로 몰았으며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는 그들 집단 내부 공통 논리로, 마녀사냥 한번 한 적 없는 일본의 피해국을 영원한 악으로 치부하고 있다. 실제 자신들이야말로 한국인들이 자신들처럼 일본인이 아니란 이유로 열등한 존재로 몰아 박람회에서 동물처럼 전시하고, 대지진 때는 민간인들까지 나서 한국인들을 인종청소하고, 생체 실험과 강제노동과 수탈과 학살을 벌였으며 지금까지도 한국인은 유전자부터 열등하고 역사상 한번도 추악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혐한 인종차별자들이 자신들의 가장 특징적인 죄를 한국에 누명 씌우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면, 뿌리 깊은 반일 감정에 기반한 외국인혐오인종차별로 몰아붙여서 사회적 약자로 자처하고 말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 약자를 악용한 정치 프레임으로 도덕적 우월주의 함정을 피해국들 앞길에 정치적 공정성의 탈을 쓰고 파놓는다. 그러니 일본식 삼단 논법이 성립한다.
대전제-영원한 선악은 없다.
소전제-가해국도 영원한 악이 아니고 피해국도 영원한 선은 아니다.
결론-피해국은 영원한 악이다.
말도 안 되는 비논리 무지성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타국을 침략해서라도 부유해지겠다는 제국주의나, 자국의 경제를 망가뜨려서라도 자신들만 부유해지겠다는 초국가적 권익 추구의 금융 제국은 말이 됐는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고, 오히려 그래서 더 강력한 동기인 이 자기합리화만이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군국주의를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행하고, 공산 진영에 맞선다는 한미일 동맹 강요로 최전방 기지인 한국에 부담을 지우며 한미 동맹까지 뒤흔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해국 클럽 문화 시작점들 중 하나, 일본인만 피해자로 나오고 조선인은 몇몇 예외를 제하면 악으로 나오고, 일본인의 악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요코 이야기의 시대에 대해 작가는 아버지의 전쟁범죄 가담 여부를 포함해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가 요코 이야기의 작가과 그 팬들 대신 당시 무슨 일이 한국에 일어났는지 밝히겠다.
요코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아무 관심도 없이 행복하게 살았는데,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살 때, 자신의 책으로 미국과 한국의 국제학교에서 한국계 학생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 관심 없었다. 태평양 전쟁은 반대하지만, 조선을 점령하려 벌인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의병 전쟁, 독립 전쟁은 반대하지 않고, 네덜란드 같은 백인 위안부들의 강제 연행 증언은 인정하지만, 우리가 이후에 모든 증거를 들어 반박할 더 오래 점령하고 더 많은 탄압을 했던 조선 위안부들의 강제 연행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의 내적 모순은, 승리에 대한 향수로 끝없이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사를 들춰내는 일본 우익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케이팝 스타가 광복 티셔츠를 입은 것을 두고 많은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광복의 기쁨에 취해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원폭을 당하건 말건 기뻐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비난한 이들이야말로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원폭의 뒤처리에 강제동원돼 더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일본이 그 사실을 숨기고 자신들만 피해자로 자처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한미 동맹은 안 되고 한미일 동맹이어야 하니, 피해국이 그런 강요의 모든 폐단을 최전방에서 혼자 뒤집어써야 한다는 게 고질적인 가해국 클럽 문화기 때문이다.
광복이 됐을 때, 그동안 일본군과 싸우며 많은 전과를 올렸던 한국 광복군은 미군과 영국군과 동맹도 맺었었고, 미군과 첫 합동 작전으로 서울 진주를 계획했다.
독립운동가 김구는 당시 일왕의 무조건 항복을 기뻐하긴커녕 크게 한탄했다.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서울에 착륙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왕의 항복이 그 이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도 일본군과 오래 싸운 광복군이 한국에 진군하지 못하면, 반드시 두고두고 문제가 되리라 그는 염려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치의 항복과 함께 미국이 바로 진주했고, 광복군처럼 오래 싸우지도 않고 정규군 상대로 전과를 올린 적도 없는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미군과 함께 파리에 입성해서 매국노 나치 부역자들을 척결한 반면, 한국은 오히려 잔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혼란을 틈타 더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지금도 일본 방송계가 한국이 스스로 독립하지 않았다고 혐한해대면, 재한 일제 세력은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싶다고 맞장구친다. 그들 조상처럼 수탈로 축재하고 싶기 때문이다. 광복절에 케이팝 스타들이 태극기만 올려도 케이팝을 키웠다고 자처하는 일본 팬들에게 인종차별 당할 뿐 아니라 한국에 대놓고 일장기며 욱일승천기를 펄럭이는 일제 세력도 있다. 그들이 어떻게 한국에 남아 세력을 떨치게 되었는가를 살펴 보면 다른 피해국들도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쳤기에 내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광복군은 미영 연합군의 다른 동맹군들처럼 연합군을 믿을 도리밖에 없었다. 소련군 역시, 그들 자신보다 일본군 상대로 더한 전과를 올렸고 독립을 위해 소련군과도 기꺼이 동맹을 맺은 한국 독립군을 철저히 배신하고 이용했다. 소련은 자국민은 물론 동유럽과 한국을 비롯,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의 복종을 요구하면서 공산주의보다 제국주의에 더 가까운 행보를 보였으며, 솔직히 우리는 소련의 무엇이 공산주의인지 알 길이 없어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설명을 기다린다.
해괴한 것은 재한 친소련파는 소련 장성들을 숙청한 스탈린의 잘못을 비판해도 소련이 동유럽이건 한국이건 스페인이건 타 국가에 가한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에 소련의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글을 찬양하는 집단 도덕적 해이 현상에 대한 제보도 받았다. 한국에서 자신들의 거짓말이 통한다 싶으면, 체코나 동독이나 다른 동유럽은 물론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회주의자들 처형과 학살에도 소련의 잘못은 없다고 우길 것이다. 이들이 소련이나 소련군에 푹 빠진 건, 결국 가해국 클럽 특유의 잔혹성에 대한 매료다. 나치 숭배와 전혀 다르지 않다.
친러파 정도가 아니라 소련 숭배자들의 준동을 막고자 소련의 책임을 명확히 한 후 본론으로 돌아가면, 광복군은 오래전부터 협력해 온 미 전략 첩보국 OSS과 첫 번째 공식 한미 동맹인 독수리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공식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진주까지 시일이 걸리는 미군보다 광복군이 조선에 먼저 착륙하고 미 공군이 병력 수송을 맡는 작전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미군이 한반도보다 일본 상륙을 더 우선시하고 한반도를 일본에 맞선 기지로 활용할 필요가 사라지면서, 광복군으로선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다.
광복군은 굴하지 않고 8월 16일에 한국인 미군 장교들을 포함해 광복군이 주축이 된 이들이 여의도 착륙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을 어기고 반발했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광복군은 18일에 기어이 여의도에 착륙했다. 포위한 후 돌아가라고 총부리를 겨누고 위협했다. 책임자인 미군 대령이 미군의 권한을 주장해도 소용없었다.
-본국에서 들은 바가 없다, 돌아가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자국 왕의 무조건 항복이 전 세계에 방송됐는데,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광복군의 진입을 무조건 막은 터였다. 진주만 기습 때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일본 스타일로, 이렇게 약속을 매번 어기는 짓은 한국이 많이 당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포로를 돌려준다며 통신사 재개를 요청했으나, 한국이 협상에 응한 후에도 끝내 지키지 않았고, 한국 IMF 때 이미 체결된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일본에 유리하게 고치라며 한국 어부들을 잡아가 구타하고 감금하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면서 늘 전쟁의 피해자, 한일 관계의 피해자로 자처하며, 미국 민주당과 함께 한국이 대지진 때 보낸 성금만도 못한 위안부 합의 같은 불공정 조약이나 강요하고 한국더러 조약을 파기한다고 자신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 씌운다. 우리는 한국 이외에도 일본식 약속의 허상을 경험한 나라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자국은 아니라면 언제든 나서 주기 바란다. 아마 진주만 기습이 미국의 억압에 따라 강요됐으니 원폭도 미국이 사과해야 한다는 미국 와패니즈 욱일승천기 매니아들이 제일 먼저 나설 것이다.
이에 미군 사령부도 분노하며, 그들이 감히 살상하겠냐며 머무르라고 했으나, 일본군은 가까이서 총구를 들이대는 한편 미군은 멀리 있었다. 언뜻 보기에 미군이 일본 정부를 시켜 조선총독부에게 무조건 항복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이 이상해 보이나, 일본군이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 모두의 명령을 독단적으로 내내 어겼다고도 할 수 있다. 애초에 자국 왕의 무조건 항복을 그런 식으로 어겼다는 일 자체가 말이 안 되니, 전무후무한 짓이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일본군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학살을 비롯한 각종 전쟁범죄에 응해야 했다는 일본군과 일본군 옹호자들의 주장에 크게 위배되는 사실로 정확한 반증이다. 고로 일본 정부가 고의적으로 조약을 어겼거나 일본군이 종전까지 정부 명령과 무관한 전쟁범죄를 독자적으로 적극 주도했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그 뒤를 이어 인접국 전부와 영토 도발이나 해대는 군국주의자들에게 야스쿠니에서 신으로 숭배받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군국주의 그 자체면 전 세계가 바라던 2차 대전의 평화와 종전까지 일본군 혼자 거부했을까. 전쟁 종료 시 미군이나 소련군만이 아니라 독일군도 기뻐했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가 기뻐했는데, 일본군 혼자 거부했다. 피해국들처럼 나라를 되찾는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피해국 초인플레 유발 같은 여전한 제국주의 탐욕을 부리느라 무조건 항복까지 어긴 것이었다. 이런 일본군을 두고 <평화를 사랑하는 군대>, <사람을 구하는 군대>니 심지어 전쟁의 피해자로 미화하는 문화가 심하니, 제로센이 그립고 욱일승천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위폐 찍어낼 시간을 버느라 군인의 명예도 내다 버린 사기꾼들을 그토록 미화하는 건 결국 그들도 그 사기꾼 군대와 똑같은 수준의 도덕성 소유자라는 뜻밖에 안 된다. 그러니 야스쿠니 가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영혼의 조상을 만나서. 전쟁 쯤 일으키면 어때, 임산부고 아기고 산채로 해부하면 어때, 항복 선언 어기고 위폐 찍어내 초 인플레 일으키면 어때, 날 위해서 그 모든 범죄를 저지른 당신들을 사랑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비난한다 해도, 나만은 당신들을 사랑할 거야, 이게 일본 미학이고 일본 문화를 망가부터 게임까지 관통하는 주제다.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나머지 세계 전부가 전화에 휩싸여도 된다는 식의 평화주의는 가짜다. 실제로 타국이 자국의 침략으로 어떤 피해를 보건 말건 철저히 묵살하고, 본인들이 피해 보기까지는 행복했던 삶만 그리워하며 그 행복의 이면에서 불행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연민도 없는, 실로 열렬한 전쟁 찬성론자들이었던 주제에 아직까지도 자신들만 피해자로 간주하고, 피해국들의 피해는 거짓말로 치부한다. 위안부의 강제연행도 거짓말, 미군 기록에도 나온 17세 이하 소년들도 섞여 있던 강제징용자들이 당한 강제노동도 거짓말이라고 욕하는 일본의 반전주의와 평화주의만 거짓말이 아닐 수는 없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기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그리워하기 때문에 요코 이야기나 욱일승천기가 그토록 인기 많은 것이고, 이차 대전에 이어 한국 전쟁까지 그리워하다 못해 행운이었다고 수상이 직접 자백할 정도고,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경제를 위해 다시 전쟁을 하라는 걸 일반 국민이 농담으로 해댄다. 참으로 대단한 일본식 반전주의고 평화주의다.
조선의 일본군들은 자신들의 반항이 또 다른 원자폭탄을 부를 가능성을 알면서도 위폐 찍어내 벌 돈에 미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국민 수만 명이 떼죽음을 당해도 전쟁 벌여놓은 주제에 자리보전에 급급했던 일왕이 사실상 두 번째 원폭을 초래했고, 결국 이미 계획이 잡혔던 세 번째 원폭 이전에 무조건 항복한 것인데, 다시 일본과 일본 민간인이 큰 위기에 놓일 일을 일본군은 사적 탐욕을 위해 무릅쓴 것이다. 무조건 항복 어기고 미군과 동맹군인 광복군에 총칼을 들이대도 자기들이 있는 조선에는 원폭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앞서 말한 욱일승천기가 펄럭이는 일본 세기말 감성도 말이 안 되는 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자들이 뭐라 상상하건, 그들은 사실상 조선의 일본군들에게 총알받이 신세였던 셈이다. 총알받이가 있으니까 무조건 감행한 위폐 초인플레기도 했다. 강제로 끌고 간 한국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사용하는 군대나 숭배하니, 그 다음은 일본 민간인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가해국 국민들은 타국민들을 갈아쓰는 제국주의를 그리워하는 바람에, 그전에 자신들이 먼저 산업혁명 당시 아동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히 일본은 영아 살해가 1980년대까지 만연할 정도로 당했다는 사실을 잊는다. 자국민도 갈아버리니, 타국민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일이 잘못되면 다시 자국민 갈아버리기로 돌아오면 되니 말이다. 이 <사람 갈아쓴다>는 소리는 혐한인들이 한국에 쓰는 용어인데, <유사 국가>만큼이나 그들과 그들 나라에 적용해 보니, 한국보다 더 잘 들어맞는다. 아마추어 시민 집단인 우리에게 늘 영감을 제공해 주어 감사하다.
일본이 원폭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무조건 항복을 한 건데도, 그걸 지키지 않았을 시 어떤 악영향이 끼치건 말건 위폐로 축재할 시간을 번 조선총독부와 히키아게샤들을 보면, 그들이 돌아갔을 때, 폭격으로 일본이 고통받는 동안 식민지에서 식민지인들을 갈아쓰며 요코처럼 행복하게 살았던 제국의 브로커들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당연하다. 밖을 노린 공격이 안으로도 잠식해서, 일본이 밖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자, 안으로도 히키아게샤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하고 교묘히 이권을 추구한 세력이 두 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았건, 역사의 피해자 운운하며 그들의 진짜 피해자들마저 가해자로 몰아가는 누명 씌우기는 끝도 없다. 가해국 클럽 문화부터가 한국의 명성황후 뮤지컬이고 위안부 소녀상이고 진짜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국수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취급하며 일본을 악으로만 보는 흑백논리라고 철거나 해대면서 정작 그런 비극의 브로커들은 양국의 피해자로 조명해 댄다. 갈수록 가해국 클럽 문화가 대중의 지지를 잃어가는 건, 대중 역시 우리처럼 클럽보다 훨씬 무식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역겨운 냄새는 마비된 그들의 코보다 훨씬 잘 맡기 때문이다.
원폭에 대해서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정작 원폭을 한 번 맞고도 일신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항복을 거부한 일왕을 신으로 숭배하고, 침략전쟁을 선전 포고 없는 기습으로 해, 제네바 협약 가입 안 했다고 식량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포로들 잡아먹어, 민간인들 여자고 아기고 인체 실험해, 결국 패해서 원폭 두 번 맞고 한 무조건 항복도 탐욕에 눈이 멀어 어기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의 치욕이던 일본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도 일본 문화의 내적 모순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만 피해자고 우리의 피해자들은 전부 거짓말쟁이다>라는 일본의 핵심 사상이면 그 모순이 전부 해결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반작용을 낳으니, 다른 나라 같으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시간에 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야 한다는 군국주의를 자자손손 물려주고 있다. 자신들 세대는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침략과 무관하다면서, 수탈과 강제 징용으로 성장한 미쓰비시 같은 전범 기업들을 통해 더러운 이익을 같이 누리면서 개인청구권을 부정하고, 독도 무력 도발을 일삼고 피해자 2차 가해와 고인 및 유족 모독, 혐한 서적이며 우익 정권 지지 같은 피해국 혐오에 적극 나서온 것이다.
일본군이 포위하며 총살 위협을 계속하는지라 착륙하기도 전부터 포위됐던 광복군은 사흘을 버텼으나 결국 19일에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OSS의 도노반 소장이 지휘하던 미군 사령부는 포로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군이 갈 때까지 머무르라고 명령했으나, 그 미군이 대체 언제까지 오는지 알아야 광복군도 더 버틸 수 있는데, 기약도 없었다. 전투기라도 한 대 먼저 보냈으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대체 어느 나라 군대가 승전한 후 이런 비겁한 패배자에게 당한 치욕을 그냥 넘긴단 말인가? 사흘 간 착륙하자마자 적군에 포위당한 채 동맹군과 아군이 버티고 있는데, 명령 외에 아무것도 안 한 미군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때 이미 하지 같은 와패니즈들이 손을 뻗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 일본을 옹호했던 세력 말이다.
작전 지휘관이던 미군 윌리엄 버드 대령은 결국 돌아가야 한다고 상부에 보고하면서, 말했다.
-이 상황에서 남으라는 건, 작전 참가 군인들에 대한 사형선고다.
사실상 상부가 남으라고만 하고 추가 지원을 파견하지 않은 상황에서, 억류는커녕 착륙할 때부터 이미 겨누고 있던 총을 난사해서 다 죽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 미군인 그가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를 위키피디아의 독수리 작전 항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얼버무리며 내용을 끝맺지 않고, 나무위키에서는 본국의 지시를 받지 못했다는 일본군의 변명을 그대로 실으며, 본국의 지시고 뭐고 일왕의 무조건 항복이 조선에도 방영됐는데, 다른 모든 군대처럼 승리한 군대에 항복했어야 했을 일본군의 죄를 결코 언급도 하지 않으며, 한국군이나 조선군 비난 때는 그렇게 날뛰던 평소의 본모습과는 전혀 다른 침묵을 표출한다.
이런 항복 후 배신은 일본 역사의 전형이기도 하다. 일본이 자랑하는 실제 역사를 토대로 한 고대 문학 작품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보면, 항복한 후 승자가 살려 주고 돌아서자, 뒤에서 비겁하게 찔러 죽이는 사태가 번번이 일어난다. 그런 일은 어디서나 일어나겠지만, 너무 잦으면서 그에 대한 비판이 적은 사회는 위험하다. 헤이케모노가타리는 명예를 중시한 이들이 비겁한 자들에게 패하면서 여자들이며 아이들까지 끔찍한 최후를 맞은 현실적인 비극을 다룬 걸작인데, 이를 가지고 인생은 무상하니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의미 없고, 영원한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배신이나 비겁하고 잔혹한 행위도 영원한 악이 아니고 이에 맞서는 것도 영원한 선이 아니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편이 낫다는 식으로 해석하니까, 무조건 항복을 어기고 위폐 사기극으로 초인플레를 피해국에 일으킨 것도 모자라, 일본이 국제 무대에서 다시 회생하게 했던 샌프란시스코 조약도 어기고 한국 전쟁이 끝나 초토화됐던 한국에 군함을 보내 독도를 침략했고, 아시아 외환 위기 이전 맺은 어업협정도 파기하고 독도 어부들을 납치해 구타하고 감금하고 벌금을 물렸으며, 지금까지도 한미일 동맹을 사실상 어기고 동맹국의 영토를 노린다. 미국은 자기들 영토 아니니까 알 바 아니라는 식인데, 모든 주변국의 영토를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무력 침탈하려 들면서, 한편으론 과거를 잊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중성의 일본이, 그 주변국들의 안보는 무슨 수로 협력한단 말인가. 동맹 밖이 아니라 안에 위협 세력이 있는 판인데, 나중에 어떤 배신을 당한들, 한국인들이 일제 세력에게 듣는 말 그대로 <당한 자가 잘못이다> <가해자 탓만 하지 말고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 하고 반성하라>는 소리만 들을 것이다.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 해야지, 피해자가 약해서 당한 게 잘못이라는 시각은 성폭행 피해자부터, 유태인, 흑인, 노예, 그 외 모든 피해국 국민이 전부 엮어들어갈 가해국 클럽의 덫으로, 일본이 가해국 클럽의 모럴 리더가 된 이유다. 실제로 가해국 클럽에선 살인이나 성폭행 가해자의 인권을 위해 쓰는 예산의 반도 피해자나 유족 지원을 위해 쓰지 않는다. 심지어 전자의 인권을 위해 후자의 인권을 희생시키면서, 그걸 인도주의라 부른다. 가해자가 두 번째 기회를 받아 마땅하다고 해서,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지원이나 권리에서 소외되는 게 무슨 인도주의인가, 그냥 가해자중심주의지, 많은 가해국 클럽 문화가 가해국 국민들에게도 소외되는 이유다. 그들 중에도 피해자가 더 많아지니, 가해국 클럽 문화는 가해국 클럽 외 모두에게 위험하기 떄문이다.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사무라이들과 달리 중세 기사들은 지키지 않아도 일단 겉으로는 훌륭한 교훈을 기사도로 내세우니 가끔은 정말로 지키는 이들도 나타나 칭송을 받고, 아서왕 전설만 해도 군주의 아내와 불륜을 범한 란슬롯도 여성들을 구하거나 돕고 말년을 참회하며 보냈다고 기술되는데, 일본은 비겁한 승자들 뒤로도 최악의 무사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국적 막론 모든 군국주의자들이 일본 무사도에 열광하게 된 이유였다. 주군에게 충성한다고 해봤자, 화나면 비무장 민간인 자유민을 바로 베어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니, 선악을 부정하며 그 어떤 잔혹한 명령도 따르는 군국주의에 가장 적합한 인간병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과 맺은 조약으로 받은 대가만 잔뜩 챙기고,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조선을 위협할 때는 바로 배신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도 사무라이에 몹시 매료됐었다.
실제로 일본군들은 사무라기 식 목 베기를 의병 전쟁이나 독립 전쟁, 2차 대전 때 한국 의병들과 독립군, 연합국 포로, 그 외 민간인들 상대로 마구잡이로 자행했다. 약자 처형에 열광하는 잔혹한 무사도를 문제삼긴커녕 일본군을 제일 빨리 용서한 연합국 가해국 클럽은 그런 정신을 그대로 품은 일본 문화를 널리 전파하는 일을 아름다운 용서라고 여겼다. 그래 놓고 왜 가장 연약한 표적인 학생들을 노린 총기 난사 테러가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세기에 강대국에서 정부 주도 인종 청소인 간토 대학살을 일으키고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피해국을 혐오하고 모독하는 문화를 피해국이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다문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들에서 인종폭동이 21세기까지 툭하면 터지는 것이다. 심지어 인종폭동은 미 국무부에 따르면 인종차별 지표도 아니다. 미 국무부는 23년 보고서를 통해 한국처럼 인종차별이 터지긴커녕 이주민 혜택이 미국보다 많은 나라를 인종차별 국가로 지목하고, 자국을 비롯해 터진 나라들은 한국보다 인종이 덜하거나 없는 나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들 논리에 따르면 한국도 빨리 인종폭동 터뜨려야 참다운 다문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식인데, 이렇게 결론이 전제를 배신하는 현상은 앞서 말한 평등주의자가 차별을 낳는 현상 그 자체다. 평등을 나와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하니 그 외는 자국민이고 빈민이고 아동이고 자국민 빈민 아동이고 전부 차별당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 사무라이는 동성애를 즐겼는데 성인이 아닌 소년이 상대였다. 기사들의 종자가 싸움을 돕는 정도거나 고대 아테네에서 남자가 소년을 보호한 것과 달리, 사무라이들의 미소년들은 미성년 성폭행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전장에서는 목숨 바쳐 주군을 지키라고 교육받았다. 소년을 사랑한 성인 무사들이 그들만은 아니었지만, 소년들에게 그런 의무를 요구한 건 그들이 유일했다. 실제 그런 존재였다고 일본인들 스스로 대하소설이나 가부키 같은 여러 컨텐츠를 만들어낸 대상인 모리 란마루는 16-17세의 나이로 오다 노부나가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 어떤 자들이야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기준은 가해국 클럽에만 적용하고 피해국들 역사와 문화는 혐오하기 바빴던 가해국 클럽 부역자들 스스로 훼손한지 오래다. 본인들은 피해국 역사와 문화를 함부로 지금까지 재단하면서 자신들만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이들이 왜 제국주의자가 아니란 말인가.
최강이라고 자부하면서 자신이 어린 나이부터 성폭행하는 소년들에게 보호받는 무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본식 강자인가. 이런 자들을 고귀하다고 칭송하니까 그냥 조선을 점령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코를 잘라 오라는 명령으로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유발하고, 조선의 왕비를 암살하라는 명령도, 시신을 집단 성폭행하고 불 질러 버리는 등 온갖 잔혹한 만행을 해대는 것이다. 심지어 아직도 그런 문화를 온갖 망가니 아니메니 소설로 미화해 대니까, 이차 대전 때 가미카제로 청년들이 몸을 내던져 희생하게 만들었던 것도 놀랍지 않다.
일본 근처 나라들은 모두 사무라이를 무사는커녕 왜구라는 이름의 해적으로 직접 겪었고, 그게 일본 문화가 해적과 사무라이를 찬미하며 역사를 덮는 이유다. 영국식 배에 타서 일본 이름으로 실제 일본 해적들이 전혀 하지 않은 짓을 하고 다니는 해적, 재밌다는 이유로 진실 은닉과 왜곡은 무시하면서 자신의 공감 능력도 분석력도 이해력도 같이 왜곡해 가는 이들, 이게 가해국 클럽 스타일 문화다. 겉으로만 화려하지 안은 텅 비었는데 바로 그걸 아름답다고 본다. 모든 건 일본 고대 문학에 나오듯 <헛되고 헛되다>여서, 선악이니 진실과 거짓을 따져봐야 뭐하겠냐며 현재 일본 문화가 해석한다. 본래 인생무상 메멘토모리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쾌락에 빠져서 죽음 같은 진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는데, 진실을 숨기겠다고 왜곡으로 점철하다 보니 그 근본부터 왜곡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니 피해국들이 가해국 클럽이 몰아붙인 악조건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 그들이 먼저 더 대규모로 자국민 타국민 안 가리고 저지른 짓을 조금이라도 따라 하게 되면, 그때는 약해서 졌으니 반성하라고 그토록 꾸짖던 이들이, 가해국과 똑같다고 더 꾸짖는다. 가해국 클럽이 어떤 술수를 쓰건 패자의 잘못이라더니, 가해국 클럽의 술수로 맞받아치기만 해도 똑같다, 아니 가해국보다 더 나쁘다는 식이다. 그럴수록 물러서지 말아야 하니, 가해자들이 자신들 역시 자신들의 수단과 방법에 당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지 않으면, 평화야말로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해국만이 악행이 저지를 수 있으니, 피해국의 정당방어는 인정되지 않고, 피해국이 가해국에 똑같이 맞선다면 가해국과 똑같거나 더 나쁘다>는 유치한 가스라이팅보다 핵 억지력이 효과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가 열거한 이런 모든 주장에 맞서 사무라이의 눈부신 명예를 수호하겠다는 이들 있으면 언제든 나서주기 바란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보받은 사례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나라라고 욕하면서 사무라이 미화 문화는 찬양하는 책이었는데, 더 다양한 사례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자신의 남성성은 비무장 민간인을 단칼에 베고 소년과 성관계를 맺고 소년에게 보호받아야 충족되기 때문에 사무라이를 좋아한다는 가장 논리적이지만 너무 흔하고 뻔한 이유는 굳이 대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군의 유서 깊은 전통인 배신을 그들 자신의 역사를 통해 다뤄 보았고, 앞으로도 기꺼이 더 많은 증거를 댈 테니 얼마든지 이의 제기하기 바란다. 배수진이란 말은, 본래 중국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이걸 가지고도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가 사랑한 한국 여인 배수진을 한국인들이 죽였다는 가짜 역사를 날조하며, 실제로 당시 일본인들에게 처참하게 죽어간 한국 여인들의 진짜 희생을 가리는 재한 일제 세력의 한국사 왜곡에 적극 대항할 테니, 제보도 계속 받겠다.
내일 연재할 2화에서는 일본군이 이런 일을 벌였을 때, 겨우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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